▲샘터 5인방두 사람은 피천득, 법정, 최인호 작가와 함께 '샘터5인방'으로 불렸다
이해인 정채봉 홈페이지
소설가 최인호, 시인 김형영, 동화작가 정채봉과 만났던 즐거운 기억이해인 수녀는 정채봉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 문병을 갔던 일과 못 다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병원을 찾았더니 환한 얼굴로 자신을 반겨주었고, 많은 간호사들에게 그녀를 보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서에 사인을 해주는데 손이 몹시 떨려서 무척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녀에게 소설가 최인호, 시인 김형영, 동화작가 정채봉과 함께 만나는 일은 즐거웠고, 때론 지나친 농담을 해도 밉지 않은 형제, 가족으로 여겨졌다.
'순천의 흙은 흑토와 황토가 모두 차져서 안 되는 농작물이 없고, 그래서 꽃과 과일도 제일'이라며 이해인 수녀에게 자랑을 건넸던 정채봉은 이제 그 순천 땅에 묻혔다. '아버지가 단 하루만이라도 휴가를 나온다면 아버지가 엄마인 할머니 품에 안겨 슬픔을 털어놓았듯, 아버지 품에 안겨 울 것만 같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노라고 꼭 한 번 말하고 싶다'는 어린 딸 리태는 이제 아버지를 따라 동화작가가 되었고, 정채봉 작가의 오래전 꿈이었던 시집을 갔으며 두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다.
"동심이 세상을 구한다." 예전에는 그의 말이 다소 거창하게 들렸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그 말을 다시 내어 보았을 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 있었다. 동심은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고, 부모를 위하는 자식의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살았던, 모두 갖고 있지만 꺼내기엔 쑥스러워 표현하지 못했던 그런 것들 말이다.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아빠는 이미 아버지가 되었는데, 엄마는 나에게 여전히 '엄마'로 남아있다. 정년퇴임을 한 뒤 늦잠도 실컷 자고 여행도 자주 다닌다고 했다.
하지만 한평생 일했던 직장을 떠난 허전함과 어색함이 묻어 있었다. 여전히 책은 틈틈이 읽는다고 했다. 내일은 서점에 들러 정채봉 작가의 동화책 한 권과 이해인 수녀의 시집 한 권을 사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유난히도 바람이 매서웠던 아침. 오랜만에 넥타이를 매어 본다. 그 방법을 잊어버렸을까 걱정했지만 엄마가 가르쳐 준 넥타이 매는 법이 용케도 손에 남아있다.
자주 안 신던 구두까지 신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서 두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곳은 인천의 한 장례식장. 수척한 모습으로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배우 성동일이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때문에 힘들게 고생했던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형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인사를 건네니, 오히려 나를 안아준다.
"고맙다. 엄마 살아계실 때 잘 해라. 그거면 된다." 덤덤했던 그의 표정과 말투가 오히려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엄마는 누구나에게 그립고, 고맙고, 미안한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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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이 다시 다가왔다, "동심이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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