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 김승옥 문학비모교 순천고등학교에서 서정인 작가 (4회)와 김승옥 작가 (9회)
순천고등학교
자리에 앉아 건넨 첫마디가 서정인 작가의 성격을 그대로 잘 보여준다. 결국 관계자들의 말을 이길 수 없었다며 쑥스럽게 웃고야 만다.
1936년, 순천군 순천읍 장천리 (지금의 장천동)에서 태어난 서정인. 어린 시절 그는 삼국지 읽기와 자신의 키보다 훨씬 깊었던 옥천에서 헤엄치며 놀기를 좋아했다. 책이 닳을 때까지 삼국지를 보고 또 봤으며, 해가 넘어간 줄도 모르고 쏘다니기 바빴다.
"인구는 8만 정도. 지금은 면적도 엄청 넓어졌죠. 법원과 호수 공원이 생긴 자리가 허허벌판이었으니까. 집이 남문다리 근처 장천동이었고 순천고등학교까지 걸어가는데 건물은 없고 논밭만 있었어요. 예전에는 바다까지 나가는데도 하루 종일 걸렸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서울대학교를 간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지금처럼 과외를 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했으면 자신은 서울대학교에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은 서울이 더 유리하고, 서울 중에서도 강남이 더 유리하다고 하잖아요. 우리 아이들도 공부하고 밤 12시에 왔는데 손자들은 더 한 것 같더라고. 예전에는 옥천에서 놀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있나요. 다른 사람들도 다 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잖아요. 그런 게 한국에서 못 살게 만드는 거죠."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물으니, 등단도 오히려 그때가 더 쉬웠을지 모른다면서 그냥 글을 쓰고 싶었고 운이 좋게 당선이 됐다고 한다. 글을 쓰다가도 아내와 딸이 보고 있으면 글쓰기를 멈춰 버렸고 하루에 원고지 몇 장을 쓰지 못할 정도로 사력을 다한 시절이 있었다. 요즘 그의 글쓰기는 어떨까.
하루에 몇 매씩 꼬박꼬박 쓰면 좋으련만 그게 잘 안된다고 했다. 대작가에게도 마감일은 두렵나 보다. 마감일이 다가오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글이 써진다고 한다. 요즘은 이메일로 글을 보내지만 예전에는 원고지에 쓰고 우체국으로 가서 직접 보냈다고, 언젠가는 우체국에서 제목을 바꾼 적도 있었다며 웃는다.
"작가의 손을 떠나면 글은 독자의 것"서정인 작가의 글은 세심하게 갈고닦은 돌 같기도 하고, 주변에서 언뜻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그림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에게는 '리얼리즘의 대가' 혹은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근본적으로 문학은 사실주의 아니에요? 사실주의가 아니면 환상이라든가 상상력을 많이 넣어서 쓰는 거지. 문학은 목에 핏대 세우면 안 돼요. 문학은 버려도 조국은 못 버린다는 말이 대단한 것 같은데 그건 문학이 아니죠. 목에 핏대 세우면 안 돼요."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묘사 못해요. 이마의 길이가 얼마라고 해도 독자들은 몰라요. 헌데 달덩이 같은 여자 하면 바로 알아요. 그것도 리얼리즘에 포함시켜야 돼요. 사실에 기반하는 것들 말이죠."단 몇 마디만으로 사실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문학의 정의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아, 잊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수십 년 동안 학생들에게 언어와 문학을 가르쳤던 교수였다는 것을 말이다.
스무 살, 문학 수업을 듣던 학생으로 돌아가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문학은 어디까지가 작가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독자의 몫인가요?
"작가의 손을 떠나면 글은 독자의 것이겠죠." 교수의 대답은 짧았지만, 정확하고 단호했다.
"내가 쓴 것을 읽고 만들어내는 소설은 분명히 당신의 것이다. 내가 썼지만 읽은 것은, 나의 독자여, 당신이었다."- 책 (<개나리 울타리> 서정인 / '독자와 공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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