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 '만장일치'를 고집하는 이유

[서평] 툭 터놓고 들여다보는 <스님의 비밀>

등록 2016.05.28 18:19수정 2016.05.2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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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가에서 입적까지, 스님의 비밀이 훤히 보입니다.
출가에서 입적까지, 스님의 비밀이 훤히 보입니다.임윤수

스님은 어떻게 되고 어떻게 살까요? 머리도 다르고, 입는 옷도 다르고, 스님들끼리도 입는 옷이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른 스님들 세계가 사뭇 궁금합니다. 이리 기웃거리며 슬쩍 들여다봤고, 저리 맴돌며 은밀히 엿들어 봤지만 보일 듯 말듯 한 비밀, 들릴 듯 말듯 한 호기심에 궁금증만 더해갑니다. 

궁금합니다. 궁금하니 더 알고 싶어지고 훌쩍 보고 싶어집니다. 스님들 세상이 궁금해 실금 같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살짝살짝 들여다봤습니다. 스님이 되는 방법과 순서, 제도와 질서는 물론 스님들 하루 일과가 궁금해 바람처럼 지나가는 얘기도 허투루 흘리지 않고 엿듣듯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볼 수 없었고 들을 수 없었습니다. 퇴적돼 가는 궁금증은 신비를 가리는 장벽이 돼 비밀의 두께를 더해갔습니다.


천 년 묵은 어둠이 성냥불 하나에 사라지고, 철옹성 같은 둑이 개미구멍 하나에 무너지듯이 비밀과 궁금증이 만리장성을 이루던 스님들 세계가 이 책 한 권으로 환하게 드러나고 우르르 밝혀집니다.  

훤히 들여다보는 <스님의 비밀>

 <스님의 비밀> (글 자현 / 사진 석공 · 불교신문사 / 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 / 2016년 5월 30일 / 값 17,000원
<스님의 비밀> (글 자현 / 사진 석공 · 불교신문사 / 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 / 2016년 5월 30일 / 값 17,000원 (주)조계종출판사
<스님의 비밀>(글 자현, 사진 석공 · 불교신문사, 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은 은밀하기까지 한 스님들 세계, 비밀의 문처럼 가려져 있는 승가, 삭발한 스님들이 살아가는 세상, 출가에서 입적까지는 물론 한국불교의 모든 것을 실감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투시경 같은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절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 가장 헷갈리는 말은 '득도'라는 말이었습니다. 득도, 이미 도를 얻었다면 무슨 구도(求道)가 필요하겠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님들 세상에서 말하는 득도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득도(得道)가 아니라 머리를 깎고 불문에 입문(入門) 하였음을 뜻하는 득도(得度)였습니다. 


출가계를 받으면 승단 소속원이 된다. 이와 도시에 안으로는 수행자이며 밖으로는 성직자가 되어 신도를 지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수계를 득도라고도 한다. 득도란 불교의 올바른 가르침을 얻어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사미(니)계는 정상적인 계가 아니기 때문에 득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098쪽-

사실 책을 펼치는 순간 어떤 부러움이 가슴에 일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쉬 접근할 수 없는 곳, 여간해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들이 너무도 실감나는 사진으로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16년 전인 2001년 6월 10일 오전 8시 30분 경, 경남 하동에 있는 어느 절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봉변을 당하듯 맞닥뜨려야 했던 어떤 일이 번갯불처럼 번쩍 떠올랐습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마당 안쪽 건물마루에서 무리의 스님들이 막 내려서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평온해 보이고 일상적인 모습이어서 그 광경을 담으려 카메라를 겨누는 순간 덩치 건장한 어떤 스님이 '뭐 하는 겨!'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으려 하느냐며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사람들 왕래가 빈번한 곳이니 은밀할 것도 없는 공개된 장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건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으려는 걸 탓하는 게 아니라 설익은 '땡중'이 똥개도 제집에서는 큰 소리 친다는 텃세 같은 '중질'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구멍이 뻥뻥 뚫린 커버를 벗기면 스님들 공부하는 모습이 드러나도록 만들어진 책 표지.
구멍이 뻥뻥 뚫린 커버를 벗기면 스님들 공부하는 모습이 드러나도록 만들어진 책 표지. (주)조계종출판사

어떤 언짢은 일이 있어 그 화풀이를 내게 퍼부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머릿속으로 그렸던 스님들 모습, 신비로울 만큼 자상하고 근엄할 거라고만 상상했던 기대가 산사태를 만난 흙산처럼 우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얼떨결에 당했던 그때의 나쁜 기억은 절 풍경과 스님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성스럽게 카메라로 담아내고 싶었던 마음을 가리는 먹구름, 달빛 같았던 마음을 산발처럼 흐트러뜨리는 비바람이 됐었습니다.  

스님이 아니고서는 감히 접할 수 없는 광경, 무리의 동패가 되어야만 볼 수 있는 비밀스런 광경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피사체로 잡아 사진으로 뽑아낸 그 엄청난 권력(?)이 배가 아프도록 샘났기 때문일 거라 생각됩니다.  

승가에서 만장일치가 가능한 까닭

만장일치? 참 좋습니다. 집단에서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장일치를 고집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공산당? 아닙니다. 스님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승가에서 만장일치를 고집합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6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일반인들과는달리 발우공양을 하는것 또한 스님의 비밀입니다.
일반인들과는달리 발우공양을 하는것 또한 스님의 비밀입니다.임윤수

승려 스무 명 중 열다섯 명은 커피를, 다섯 명은 녹차를 택한 상황에서 아무리 설득해도 더 이상은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고 해보자. 이럴 경우 현전승가 자체를 커피팀과 녹차팀, 둘로 나눠 각각 다른 거주지에서 살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각각의 만장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붓다가 제세하는 만장일치 해법이다.(중략)

그러나 이 같은 분리는 최후의 수단이다. 집단을 분리하기 전에, 리더는 지난할 정도로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리더의 자질이 부족한 것으로 본다. 집단이 분리되면 설득에 실패한 리더는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 즉 리더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대중을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집단 분리와 함께 리더 역시 교체되는 것이다. -166쪽-

만장일치가 가능한 건 세속을 떠난 스님들 세상이어서가 아니라 지난할 정도로 발휘해야 할 리더십, 대중을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 내야하는 절박한 리더십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 교리가 아니라 스님의 비밀 궁금증 해소시켜 줄 투시 창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은 부처님 말씀, 불교교리가 아닙니다. 일반인들이 궁금해 할 수 있는 스님들 세상, '스님'이라는 호칭의 유래에서부터 스님을 달리 부르는 이런저런 이름, 스님들이 역할 해야 할 소임, 스님들이 먹고 사는 속사정까지를 리얼하게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행자는 절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자는 사람이다. 행자는 절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과 육체적 노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사찰 생활과 문화를 익히는 것이 바로 행자의 삶이다. -087쪽-

출가 수행자인 스님의 일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출가에서 입적까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가를 결심하기까지는 개개인의 사연이며 까닭이겠지만 출가에서 입적까지의 여정은 씨줄 같은 제도와 날줄 같은 생활로 구법의 삶을 잣는 스님들만의 길쌈질입니다.

 스님은 어떻게 되고 어떻게 살까? 머리도 다르고, 입는 옷도 다르고, 스님들끼리도 입는 옷이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른 스님들 세계가 사뭇 궁금합니다.
스님은 어떻게 되고 어떻게 살까? 머리도 다르고, 입는 옷도 다르고, 스님들끼리도 입는 옷이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른 스님들 세계가 사뭇 궁금합니다.임윤수

스님들에게 물어도 속 시원하게 설명들을 수 없었던 역사와 유래, 아침에 들리는 범종 소리는 33번이고 저녁에 들리는 범종 소리는 28번인 까닭, 부처님 전에 올리는 '마지'에 담긴 정성, 왜 사십구재이고 천도재인까지를 알고 나면 삭발머리 가사장삼에 가려있던 깜깜한 스님들 비밀이 주변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밤하늘에 빛나는 일월성신처럼 반짝반짝 드러납니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비밀, 스님과 스님의 삶에 대해 품었던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따라 해보고 싶고 경험 해보고 싶은 또 하나의 유혹입니다. 스님에 대해 가졌던 궁금증, 스님의 세상이 품고 있었던 모든 비밀이 이 책 한권에서 비밀해제 되듯 밝혀지니 영원한 비밀은 없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쑥 들어가 거리낌 없이 둘러보는 스님 세계, 실감 나는 사진은 궁금증을 출가하게 하고, 낱낱이 이어지는 설명은 불교에 대한 지식을 도톰하게 돋아 주니 <스님의 비밀>에서 보고 읽는 사진 한 장, 한 토막의 글 마디가 상식에 지식을 더해주는 플러스알파가 돼줄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스님의 비밀> (글 자현 / 사진 석공 · 불교신문사 / 펴낸곳 (주)조계종출판사 / 2016년 5월 30일 / 값 17,000원

스님의 비밀

자현 스님 지음,
조계종출판사, 2016


#스님의 비밀 #자현 #석공 #(주)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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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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