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조정래 길'이 시작하는 낙안읍성의 전경
순천시청
2005년 순천시가 만든 '조정래 길'2005년 순천시는 조정래 작가의 이름을 딴 '조정래 길'을 만들었고, 그 표지석을 낙안읍성 앞에 세웠다. 낙안면 신기리 구기마을부터 승주읍 죽항리 죽림마을을 잇는 20km의 조정래 길이 생긴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을 길에 내어준 파격적인 일이었다.
낙안은 나의 할머니 댁과 외할머니 댁이 있는 곳이다. 할머니 댁에 가는 길이면 외할머니 댁에도 함께 다녀오고는 했다. 낙안은 벼농사와 함께 배, 오이 재배를 많이 하고, 읍성 안의 초가집에는 주민들이 실제로 살고 있다.
명절이나 제사를 위해 낙안에 가면 친척들과 함께 금전산과 제석산을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낙안읍성은 빠지지 않고 꼭 들렀는데, 정작 할머니는 바로 집 앞인 읍성에 가본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읍성에서 시작하는 조정래 길을 따라 벌교와 낙안 일대를 지나면 조정래 작가의 고향인 선암사에 도착한다. 어린 시절 자가용을 타야만 갈 수 있었던 선암사에도 버스길이 생긴 것이다.
조정래 작가의 글쓰기에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다독, 다상량, 다작을 하세요." 그가 말하는 좋은 글쓰기는 평범하지만 정확하고, 스스로가 실천해서 증명한 방법이다.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고 싶어 하고, 작가들은 그의 글을 닮고 싶어 한다.
조정래 작가의 이름으로 전북 김제에는 '아리랑 문학관', 벌교에는 '태백산맥 문학관'이 세워졌다. 그는 작가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문학관을 갖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살아생전에 두 개씩이나 지어졌으니 큰 영광과 보람이라고 했다.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은 건축가 김원의 디자인으로 제석산에 세워졌다.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1만 6천여 매 분량의 태백산맥 육필원고를 비롯해서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작가가 직접 머무르면서 집필활동을 하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분명 조정래는 뛰어난 작가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남편이자, 어떤 아버지일까. 아내에게 한 없이 잘 하다가도 느닷없이 소리를 질러 빵점으로 만드는 바보인데다 최고의 아버지, 시아버지는 기대도 하지 않고 일찍 포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 김초혜 시인이 손자들에게 건네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다. 할아버지처럼."- 책 (<황홀한 글 감옥> 조정래 / 본문 일부) 그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는 작가다. 여전히 끊임없이 글쓰기에 매진하고,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것은 오래전 그의 유명세 때문이 아니라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식지 않는 열정과 창작의지 덕분일 것이다. 자신의 재능보다 노력을 더 믿었다는 조정래 작가. 예전에도 앞으로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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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사람 조정래, 그와 함께 둘러보는 고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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