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깨비가지는 어제까지 보이지 않았을까

[포토에세이] 자연의 걸음걸이

등록 2016.06.14 15:28수정 2016.06.1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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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산딸기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잘 익은 산딸기가 달콤했다. ⓒ 김민수


자연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바라보면 '언제 이렇게?'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변하지 않는 듯, 느릿느릿 걸음이지만, 그 걸음은 저만치 앞서가는 발걸음처럼 느껴진다.


산책길에 산딸기를 만났다.

꽃이 피는 것을 보았던가? 얼핏 본 것은 같았다. 꽃이 지는 것을 보았던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새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잘 익은 것을 몇 개 따서 입안에 털어넣으니 밤새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군내나던 입에 달콤한 향기가 퍼지고, 온 몸이 산딸기이 달콤함에 깨어나는 듯하다.

제법 많다.

이럴줄 알았으면 산딸기를 따서 담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올 것을 싶을 정도로 산딸기 풍년이다. 그것도 욕심이려니 싶어 두어 번 더 따먹고는 다른 사람 혹은 숲의 동물들과 하늘의 새들의 몫으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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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꽃 이제 곧 밤나무꽃이 한창 피어나고, 한동안 밤나무꽃의 향기가 현기증을 일으킬 것이다. ⓒ 김민수


참으로 신기한 것이 자연의 시간이다.


지구온난하다 뭐다해서 계절의 구분이 없어졌네, 빨라졌네 요란법석을 떨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끊임없이 피고지는 순서대로 피고질 뿐이다.

그들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처럼 숫자개념이 아니다.

숫자로 몇월 며칠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앵두가 익어갈 무렵 산딸기도 붉게 익어가고, 벚꽃의 열매 버찌가 익어 떨어질 즈음이면 밤꽃이 피어나고, 밤꽃의 향기가 그득한 계절이 오면 한창 숲과 길가를 노랗게 물들였던 애기똥풀의 노란빛이 들판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이맘때면 살구도 익어가기 시작한다.

자연의 시간은 이런 식이다.

인간의 월력으로 얼마나 더 빨라지고 느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의 시간으로는 여전히 그 순서대로 피고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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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 분단의 철조망을 기어이 타고 넘는 덩굴식물 ⓒ 김민수


사람들은 저만 최고인 줄 한다.

사람이 아닌 다른 자연은 모두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 양 생각하고, 자기의 기준에 맞춰서 잡초니 독초니 구분을 한다. 모든 것이 인간중심적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에 서툴다.

그러나 자연은 늘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 주어지더라도 더불어 살아간다.

분단의 상징 철조망, 그 녹슨 철조망을 지주삼아 하늘을 향하는 덩굴식물을 보면서 그들의 그런 사랑만이 분단을 극복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한다. 그저 감싸안고 살아가는 것, 적대시하고 적으로 규정하며 혐오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감싸안는 신비를 덩굴식물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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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목 마가목의 흰꽃이 마치 겨울아침 성에꽃이 피어난 듯 하다. ⓒ 김민수


제법 아침부터 덥다.

마가목의 하얀 꽃이 눈이 내린 듯 혹은 눈꽃이 피어난듯 눈부시게 빛난다. 이렇게 작고 예쁜 꽃이었구나 새삼스럽다.

그냥 멀리서 바라볼 때에는 그냥 하얀꽃이려니 했는데, 가까이 들여다 보니 예쁜 구석이 너무도 많다. 피어난 꽃들과 피어날 꽃몽우리들과 피어있는 꽃들, 모두 한통속이다. 다르되 다르지 않다. 그렇게 어울려서 꽃송이니까.

가까이 더 많이 깊게 알수록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사실은 다 그렇다. 여전히 그 어떤 사람이나 대상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면, 아직도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자신만의 색안경을 벗을 생각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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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가지 가지과의 도깨비가지, 줄기에 가지가 성성하다. ⓒ 김민수


그들은 어떻게 그 숲에 자리하게 되었을까?

오직 서너 평 공간 안에만 피어있다. 가시가 성성한 도깨비가지, 꽃은 가지꽃이나 감자꽃하고 비슷하다.

지난 봄부터 줄곧 산책길로 삼았던 길인데 왜 도깨비가지는 어제까지는 보이지도 않았을까? 분명히 오래 전부터 그곳에 피어있었을 터인데, 왜 어제까지는 보이지 않고 오늘에서야 보이는 것일까? 설마, 어젯밤부터 싹을 내고 꽃을 피우진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아마 그 지점을 걸을 때에는 오늘과 다르게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겼거나, 다른 곳에 시선을 빼앗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 내가 보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구나!'

본 것만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보지 못한 것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 기어이 창 자국을 만지고서야 예수를 믿었던 도마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군상들이 우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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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개망초가 아침햇살에 기재개를 켜며 피어나고 있다. ⓒ 김민수


어느새 개망초는 갈 시간이 다가온다.

분주함에 찌들어 개망초가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피었다가 가는지를 볼 겨를이 없었다.

그냥 언제든지 자연은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니까 네가 볼 마음만 있으면 마냥 기다려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들은 매일매일, 변하는 것 하나도 없는 듯이, 매일매일 단 하루도 변하지 없는 날 없이 살아온 것이다.

우리도 하루하루의 축적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므로, 오늘은 지난 모든 날의 축적된 결과이다. 우리가 조금 더 천천히, 느릿느릿 살았다고 해도 지금보다 훨씬 못미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어쩌면, 숨차지 않게, 더 많은 것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보다 더 원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인간도 자연의 일부니까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느릿느릿 가는 듯, 변하지 않는 듯하던 자연이 시간의 축적을 통해 만든 오늘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런 걸음걸이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느릿느릿 걷기로 작정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산딸기 #마가목 #도깨비가지 #개망초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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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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