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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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그것이 우리 절망의 원인이라면, 그럴 이유는 없다. 이젠 혁명과, 그 혁명을 이끄는 한 사람의 영웅이 필요한 시대는 지나갔다. 한 사람이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수가,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과, 혁신과, 교육과, 토론. 그 모든 것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나갈 것이다.
한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혁명은 없다. 우리의 혁명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용히 다가올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바로 우리 시대의 이야기다. 이미 개인과 개인의 네트워크 속에서 벌어지는, 과거에는 주변적이라 생각했던 사건들이 사회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책과 영화가 대형 자본 없이 개인의 작은 돈을 모아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SNS에서 탄생한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개인방송 출연자들이 수억대의 돈을 받는 것은 물론, 이제 지상파에서 그들의 포맷을 빌려오기까지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방송을 만들고 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팟캐스트와, 아프리카TV와, 유투브는 더 이상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일상해 안착해 있다.
수많은 개인과 개인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힘은 존재할 수 없다. 그 네트워크 속에서 소통하고, 성장하고, 때로 좌절하고, 또 재기하는 역동적인 개인의 힘이 세상을 견인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아니 적어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논리를 보다 촘촘하게 만들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세상이 온다면, 민주주의란 모든 공동체에서 얼마든지 현명하게 이용될 수 있다.
어쩌면 민주주의란 오만한 제도다. 절반 이상의 사람이 현명하지 않다면, 사회는 퇴보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절반 이상의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겠다는, 더 열심히 교육하고, 소통하고, 때로 반성하고, 공부하겠다는 사회적 의지의 표명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수많은 공동체들이 가진 의지를, 그 저력을, 여전히 신뢰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희망의 언어는 그래서 '개인'이다. '개인의 힘'이다.
우리 시대의 표제는 절망이다. 더 이상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며, 인류가 알고 있는 세상 바깥에서 성장의 동력을 찾아낼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그 역동하는 힘과, 주고받는 말과 글 속에서 진보하는 사회가, 이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힘이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폐허 속에서의 재건이었다. 폐허가 되어버린 시대를 재건하는 일은 인류가 그 긴 역사를 두고 언제나 해왔던 일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재건의 동력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인류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절망적이고, 세상 이야기를 하는 나는 그래서 앞으로도 절망을 논할 것이다.
높은 등록금 때문에 한 평짜리 고시원에서 잠을 자는 청춘이 있고, 사회에 나가자마자 받아든 것은 오직 빚뿐인 청년들이 있고, 생존의 문턱에서 허덕여야 하는 빈민이 있고, 거리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이 있고, 마음껏 사랑할 수 없는 성소수자가 있고, 저녁에 친구와 농구 한 판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을 배달해야 하는 청소년들이 있으므로. 나는 여전히 절망을 논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아직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힘을 끝까지 몰아치진 않았다. 우리에게는 아주 약간의 틈새가 남아있다.
그리고 그 약간의 틈새가 세상을 바꾼다. 틈새를 통해 사람들과 만난 현명한 개인이 세상을 바꾼다. 그리고 그 현명한 개인을 만들어낼 동력은, 우리 사회에 얼마든지 남아 있다.
절망이 세상을 지배하지만, 그 절망을 규제할 힘과 시간이 여전히 남아있다.
쉬지 않고 가다보면 언젠가 끝이 보이는 법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언젠가'가 아니라, '쉬지 않고'다. 나는 오늘 희망의 가능성을 논하지만, 그 가능성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희망을 찾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많은 힘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미안하다. 세상과 개인은 당신을 필요로 할 것이다. 당신의 힘을 필요로 할 것이다. 절망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노래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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