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이 사라진 강의용 탁자강의용 탁자에 노트북을 사라지고 빔 프로젝트 리모콘만 놓여있다.
정경숙
혹시 누가 조교실에 맡겨 뒀나 하고 얼른 가보았으나, 거기에도 없었다. 그때부터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13년 전 잃어버린 노트북 생각이 났다. 당시에 누군가 내 연구실로 열쇠를 따고 들어와 사용한 지 얼마 안 된 새 노트북을 훔쳐 갔던 것이다.
결국 그 노트북도 범인도 찾지 못했다. 난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내 바로 다음 수업을 진행한 동료 교수 연구실로 갔다. 학생들 워크숍 지도를 하고 있던 그 교수는 "노트북이요? 아까 수업시간보다 5분 일찍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탁자 위에는 아무 것도 없던데요?" 하고 말했다.
내가 강의실에서 나간 게 1시 35분이고 다음 교수가 1시 55분에 들어왔다면, 20분 사이에 그 노트북이 사라진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 학생 중 누가 가져간 게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영화편집용으로 쓰기 위해 산 맥북프로이다. 신형은 너무 고가라 작년에 중고로 구입했지만, 학생들로선 제법 비싼 고급 기종일 것이다.
나는 일단 수업을 듣던 학생들 명단을 찾아 일일이 전화했다. 발제하느라 내 노트북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학생에게 전화해 보니, "전 발표 끝나고 교수님 노트북 전원을 끈 뒤 덮개를 닫고, 빔 프로젝트 연결 잭을 빼서, 탁자 위에 그대로 두고 나왔는데요"라고 말한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 참, 가져가기 편하게 해놨구나. 하지만 전원을 껐다면 비밀번호가 있어서 다시 켜기 힘들텐데..." 면담 순서를 기다리느라 잠시 강의실에 대기하고 있었을 법한 학생들에게 전화해 보니, "전 그때 화장실 갔다 와서요" "전 담배 피우러 나갔다 오느라"라고 얘기한다. 누군가 내 수업 끝나고 다음 수업 시작 직전까지 한 여학생이 강의실에 계속 있었다 해서 전화해 보았다.
"교수님, 저는 그 때 피곤해서 자고 있어서 잘 몰라요." "그래, 진짜 계속 자기만 한 거야?" "그럼요. 근데 교수님, 혹시 제가 의심스러워서 전화하신 건가요?""야, 아냐, 그게 아니고... 아까 내 수업 들은 학생들 다 전화해 보는 거야. 목격자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널 의심해서 전화한 거 아니니 오해하지 마." 더 이상 다른 학생들에게 전화해서 노트북을 가져간 범인을 찾으려는 시도는 멈춰야 했다. 자칫하다간 내 수업을 들었던 모든 학생을 용의자로 의심해야 할 판이니 못할 짓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도대체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어떻게 교수의 노트북을? 나에게 무슨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나?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낯선 외부인이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랬다면 우리 학생들이 기억했을 것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처럼 누군가 천장에서 내려와 노트북을 들고 감쪽같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대체 누가 가져간 것이고,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목격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일까? CCTV도 없고, 노트북이 중고품이라 위치 추적 장치 같은 기능도 없어서 가져간 사람이 돌려주지 않는 한 찾을 길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노트북에 암호가 걸려 있어 결국 사용 못하고 다시 돌려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몇 번이나 빈 강의실로 들어가 노트북이 마지막으로 놓인 그 탁자와 그 주변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조교는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학과장에게 얘기했지만 딱히 대책이 없었다. 앞으로 복도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데 공감한 정도였다.
대자보를 붙여 찾아볼까 생각했지만, 학과 내에서 일어난 부끄러운 사건을 외부 사람이 알까 겁났다. 3일째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까지 내 수업을 들었던 30여명의 학생 중 내 노트북을 잃어버린 걸 걱정하며 관심 가진 학생은 거의 없었다. 딱 한 학생만이 간단한 격려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잃어버린 컴퓨터보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창피해서 노트북 분실 얘기는 내 가족에게도 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그 노트북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나 스스로 어떻게 그 사건을 마무리할지 고민이 되었다.
나는 마침내 그 사건에서 해방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전체 이메일을 썼다. 서두에는 그동안 노트북 분실경과를 자세히 쓴 다음, 마지막에 내 노트북을 가져한 학생에게 보내는 아래와 같은 편지를 첨부했다.
내 노트북을 가져 간 사람에게 (쓰는 편지)어차피 가져간 거라면 유용하게 잘 쓰길 바란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노트북이 너에겐 절실히 필요했나 보구나. 너도 오죽 힘들고 어려웠으면, 그 상황에서 노트북을 가져갔을까 생각하니 마음 아프다. 누군지 안다면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너를 도와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 노트북, 나에게 선물 받은 거라고 생각하고 잘 써라. 그런데, 내가 그 노트북에 암호를 걸어놓았는데, 어떡하지? 무리하게 열려다 괜히 고장 내지 말고, 지금 가르쳐 줄 테니 열어서 쓰길 바란다. 암호는 'qffw1'이다.내가 그 노트북 찾으려고 애쓰지 않을 테니까, 학교에 가지고 다녀도 괜찮을 거다. 나는 돈이 좀 들더라도 그냥 최신 버전으로 새로 사서 쓸 생각이다. 물론 그 노트북 그냥 너에게 공짜로 주는 건 아니다. 추후에 이번 행동에 상응하는 좋은 일을 어디서 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는 다시는 남의 것을 절대 허락 없이 쓰거나 가져가진 말길 바란다.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정직하게 살기 바란다. 그리고 미안하다. 네가 피치 못하게 그런 행위를 하게끔 상황을 제공한 나도 잘못이 있는 것 같으니까. 나도 앞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할게. 그동안 스승으로서 너에게 좀 더 따뜻하게 다가가지 못한 나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2016년 6월 4일, 밤 ...........000오글거리긴 했지만, 그 편지를 보내고 나니 왠지 후련했다. 정말 내가 그 노트북을 우리 학생 중 한 사람에게 정식으로 선물한 것 같았고, 착한 일을 하고 난 뒤의 뿌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나는 비로소 그 사건의 전말을 가족에게 알렸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딸이 놀려댄다.
"아이고, 마음이 바다처럼 넓고 깊으신 교수님 오셨습니까? 남는 노트북 있으면 저도 하나 훔쳐가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선물로 주실 거잖아요?"평소에 '타인에 대한 사랑도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다'라 믿어온 나는 결국 날 위해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고 멋지게 포기해야 했다. 나로선 어차피 못찾을 노트북을 그렇게라도 해야 불필요한 시간낭비 없이 마음 편하게 바쁜 내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 편지 덕분에 나는 곧바로 이어진 중국 출장을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고, 그 사건을 거의 잊고 지냈다.
믿을 수 없는 반전, 잃어버린 노트북이 돌아오다노트북을 분실한 지 20일이 지난 날, 그 수업의 기말고사를 치르고 채점을 하는데, 한 여학생의 답안지 말미에 쓰인 추신이 그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아이는 노트북을 분실했을 당시 강의실에서 자고 있었다는 그 여학생인데, 자신은 다른 학생들이 모두 받은 전체 이메일 편지를 못 받았다는 거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단다.
'혹시 자기를 의심해 자기한테만 편지를 안 보낸 것이 아닌가' 되게 신경 쓰인다고 호소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놀라 즉시 그 여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아마 그 여학생은 어떤 알 수 없는 컴퓨터 에러 때문에 못 받은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널 의심한 적 없으니 걱정 마라'고 달래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오후, 내 수업을 듣던 학생 ○○가 연구실에 찾아왔다. 착한 인상을 가진 그 아이는 내 앞에 앉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수님이 잃어버린 노트북 제가 보관하고 있어요.""뭐라고? 진짜야?""실은, 그 노트북, 한 친구가 가져갔다가 직접 돌려주기 곤란하니까, 저보고 대신 좀 전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놀라움, 반가움, 궁금증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나는 애써 진정하고 그 학생이 왜 그걸 가져갔고, 어떻게 돌려줄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