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반도에서 시집 <거대한 트리>를 읽다

등록 2016.07.19 08:48수정 2016.07.1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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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거대한 트리> 전북대학교풀판문화원 건지시인선02
시집 <거대한 트리>전북대학교풀판문화원 건지시인선02김경희
몽골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서 우리나라의 사드 배치 계획을 향해, 러시아 총리가 "한반도에서 대규모 위기 가능성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는 자막이 TV로 비친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분단 한반도의 현실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는데, 정작 치명적인 독기의 촉수로 서로를 겨누고 있는 양측은 오로지 스스로의 독에 취해 있을 뿐이다. 힘없는 자신의 몸뚱이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언제 희생당할지 가늠할 수 없다.


남과 북의 어두운 눈은 스스로의 내부에서부터 바로 떠야 한다. 심각한 자아분열을 앓고 있는 한반도의 의식 귀환은 언제일지 모른 채 뜨거운 열기에 들끓고 있는 한반도에서 이 여름 시집 한 권을 읽었다.

진안 마이산 나오다 북한산이라는 말에 / 돌아서서 구입한 싸리채반 두 짝 /
고려청자나 옛 그림 손에 넣은 것처럼 / 소중히 받쳐 들고 한 자리 모셔 두었다. /
이만 원 자본에 연결되는 동족의 손길 / 낯익은 매듭 엮어 낸 노동의 대가로 /
그들에게 돌아간 몫을 알 길 없지만 / 그릇이 필요치 않은 시대 그릇 하나 놓고 /
어디에 쓸 것인지 생각해 본다. / 척박한 산야에서 자라던 싸리나무 / 
부러지지 않게 휘돌리는 부드러운 곡선 / 끝을 이어 다시 갈무리하는 솜씨 /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결속으로 / 북에서 남으로 굴러온 그릇 하나 /
담아야 할 것 없어 담아야 할 것이 / 너무 많은 시대 무엇을 얹을까 /
벽 막힌 하늘 반쪽 올려다 놓으면 / 조국의 아침 환하게 트여 와 좋겠고 /
좋겠지 썬 호박도 단맛 들여서 / 남북이 함께 잔치 떡 해 먹을 날 /
기다리는 마음을 하얀 눈 떡가루 / 채반 위에 가득 날려 볼 때 /
순간 둘러앉은 사람들 말소리 / 껍질 헐벗고 단단하고 촘촘히 /
싸리채반 매듭에 절어 탱탱하다.  (「싸리채반」 전문)

북녘 사투리 높고 남녘 사투리 낮으니
소리는 안 되고 한글도 온 세상 듣는 말이니
대륙도 모르고 섬나라 모르고 먼 동쪽 모르게
주고받는 우리만의 신호는 우리 반도
가득한 계절 언어로 합시다.

붉게 피어 북으로 가는 봄 진달래
북쪽 넘치면 높아지는 남쪽 강물
한라까지 백두에서 물들어 오는 단풍
아무도 모르는 신호 어느 때나 있어

"조선 동해에서 흘러드는 습한 공기와 지형의 영향으로
함흥, 원산에서는 눈이 내렸습니다."
조선중앙TV 보도 소리 백두대간 타는 눈발
남이라 북이라 한반도 폭설로 갇혀도
삼천리 고샅길 잇고 잇는 우리만의 소통


대륙도 모르고 섬나라 모르고 먼 동쪽에서도 모르는  (「계절 언어」 전문)

임백령이라는 시인이 펴낸 첫 시집 <거대한 트리>(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건지시인선02)에는 남북이 하나 되려는 의식적인 몸짓과 열망으로 가득하다. 남쪽의 '나'는 북쪽의 '그녀'를 걱정하고 그리워하고 서로의 생각을 하나로 모으려는 노력을 한다.


시인은 '저자 후기'에서 '집요하리만큼 동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끝나지 않는 냉전의 현실에 던지는 시인의 메시지'라고 말한다. 시인의 순수한 생각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 대규모로 닥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정말 절박하게 의식 전환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노래는 계산된 노력으로 피어났을 것이다.

우리는 동족이고 우리의 분단은 적어도 우리만의 잘못은 아니었으므로, 당장 통일이 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통째로 날리고 모두가 자폭하는 비극을 선택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소달구지에 솥단지에 어깨에 말에
가만히 내리는
달빛

밤늦게 길을 가는
먹을 것 비어 있는
돌아가는 여성 동무의 처진
그들이 나누는 희미한  (「적지(敵地)의 달」 전문)

제1부의 시편들은 이념의 문제로 동족끼리 다투는 과정에 희생된 사람들의 존재를 감싸 안은 작품들이다. 한반도 온 땅과 지리산, 제주도 한라산을 배경으로 동족 간의 전쟁, 보도연맹 학살, 4.3의 비극 등을 다루었다. 왜 시집 이름을 '거대한 트리'라고 했는지를 알게 된다.

깊은 산골짜기 들어서는 트럭 속에 / 인형(人形)들이 가득히 실려 있었다. //
두 손 뒤로 묶인 인형들은 / 죽은 뒤에도 눈을 감지 못하였다. //
구멍 밖으로 파편 같은 공포와 / 분노의 뇌수가 터져 나왔다. //  
부서지는 인형들 몸속에도 / 눈물 받던 뼈가 있던 것일까. //
이 나라 도처 산골짜기 구덩이 / 밤하늘 별빛처럼 인광이 반짝였다. //
인형을 기억하는 벙어리 몇 사람이 / 뼛속에 박힌 죽음의 형장을 증언하였다. //
표적이 된 죽음의 사상과 그것을 포박하던 / 인형의 표정들 사라지고 없는 곳 //
이 나라 어디에선 지금도 / 수십 년 전 일이 살아나 //
트럭 속에 가득히 실려간 인형들 / 깊은 산골짜기에서 처형당하고 있다. (「살상(殺傷)」 전문)

3부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흘러가는 현실 속에서 나약하게 살아가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4부는 백령도 해병 아들을 만나러 가서 느낀 것을 담았다고 한다. 임백령 시인의 첫 시집 <거대한 트리>는 분단의 시대 굳건한 이념의 장벽을 깨뜨리려는 무기였을 것이다. 그것을 막아내고 무력화시키는 사드는 우리 마음 안에 이미 설치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런 장애물을 걷어내고 시인과 같은 눈을 뜨게 될 때 우리 한반도의 역사는 그나마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트리

임백령 지음,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거대한 트리 #임백령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건지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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