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이크와 엘리자베스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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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크를 특별히 주목한 것은 그를 통해 엘리자베스 1세 당시 리더십의 일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적 두목이라면 귀족 세계에서 멸시와 배척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런 인물이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강한 반발을 사기 쉽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드레이크를 배척하기보다는 귀족 세계로 끌어들였다. 엘리자베스 1세가 분열과 배제가 아닌 통합적 리더십을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 점은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 왔던 스코틀랜드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엘리자베스 1세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의 왕위 계승을 뒷받침함으로써 스페인과의 대결에 적극 협력하도록 유도했다.
대영제국을 만든 힘은 국익 앞에서는 신분과 경력, 종족에 구애됨 없이 최대한 힘을 모은 통합적 리더십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영국은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략적 이해에 이끌려 국론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스코틀랜드의 독립 움직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영국이 과거의 영화를 되찾는 것은 고사하고 현상 유지마저 쉽지 않은 상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순신과 선조의 불화... 조선의 발전을 막았다지금까지 우리는 영국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았다. 과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영국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국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을 간략히 되짚어 보자.
영국 해군이 칼레 해전에서 화포 공격 위주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것은 유럽 세계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 역시 그 같은 전법으로 연전연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의 주력 무기인 조총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상태에서 화포 공격을 가했다.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의 구조 또한 함포 사격에 매우 적합했다. 바닥이 U자 형이었기에 함포 사격 반동으로 흔들릴 가능성도 낮았고 제 자리에서 360도 회전하며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었다. 반면 바닥이 V자 형인 일본 수군의 함선은 이러한 공격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엉뚱한 상상을 해 보자.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기량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러한 수군 역량을 잘 활용했다면 조선은 해양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백제, 통일신라, 고려 등 한반도 국가들이 뛰어난 선박 건조 능력을 바탕으로 해양강국의 전통을 이어 온 점을 고려한다면 그 가능성은 충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해양강국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농업 중심의 사회구조적 환경이 그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여기서는 최고 통치자인 선조와 조선 수군의 지도자 이순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선조는 이순신의 탁월한 기량을 인정하여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기는 했지만 둘 사이에는 불신과 경계의 시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순신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선조에 대해 강한 불신과 냉소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