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메갈입니까?" 수준 낮은 사상탄압

[주장] 창작자가 사상을 이유로 배제되지 않도록,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

등록 2016.07.25 15:20수정 2016.07.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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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연 성우가 자신의 트위터(@KNKNOKU)를 통해 올린 포스팅. 티셔츠에 쓰인 문구도, 그녀가 사진과 함께 올린 대사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 @KNKNOKU


한 장의 티셔츠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누가 옳았네, 누가 틀렸네로 분열되어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소위 '메갈 티셔츠'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넥슨이 이 티셔츠를 입은 인증샷을 SNS에 올린 김자연 성우를 일방적으로 배제시켰다. 혹자는 말한다. 김씨는 이미 자신이 목소리로 참여한 부분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고, 애초에 넥슨과 고용관계가 아닌 상태였으므로 해고라는 표현은 올바르지 않다고. 백번 공감한다. 하지만 그 부분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문제일 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애초에 김씨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메갈리아 웹사이트에 가입해서 활동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혐오 게시물을 방관하고 있으니 법적인 움직임을 취하자고 말한 메갈리아4의 취지에는 공감하며 더 나아가 메갈리아가 견지하고 있는 젠더적인 관점은 수용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메갈리아가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이트임은 분명하고 성우 본인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본적인 태도에는 공감한다'라는 식의 스탠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성우를 교체하라는 요구를 할 만큼 중차대한 문제란 말인가?

결국 이 문제는 특정 커뮤니티의 태도를 일정부분 수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쟁이 필요한 것일 뿐이다. 김씨가 계약 비용은 모두 받았고, 부당해고가 아닌 계약 해지라는 사실관계는, 정말 중요하지도 않은 사실관계에 불과하다. 계약 비용을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근로기준법 위에서 논쟁을 해야 하는 문제지만 받았다 치더라도 태도를 가지고 사상검증 수준의 배제를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소비자 운동의 차원이라고?

또한 이런 지적도 있었다. 넥슨에 성우를 교체하라고 한 것은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것. 즉 '기업은 사회적 주체로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특정한 입장을 취할 수 있으며, 반대로 그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 등의 방식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라는 주장인 것이다. 


이 주장에는 두 가지 논리적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 메갈리아의 메시지에 대해 특정 입장을 표명한 것은 넥슨이 아니고 개인으로서의 김자연 성우다. 둘째, 소비자로서의 게임 유저가 소비하는 것은 성우가 참여하여 만든 게임일 뿐, 성우 개인의 사상이 아니다. 누가 당신들한테 성우의 생각을 소비할 권리를 주었는가?

위에서도 말했듯이 특정 커뮤니티를 이용 혹은 옹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게임 유저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성우가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면 게임을 보이콧했으면 될 일이다. 그것이 그마나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도대체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비난하는 것이 어떻게 소비가 될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은 성우의 교체가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시대착오적 낙인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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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개발자연대가 넥슨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 게임개발자연대


이제 논란은 또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넥슨이 성우를 교체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넥슨의 행동을 비판하며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겠다고 나섰다. 그 중에 많은 비율로 웹툰 작가들과 게임 개발자들이 있다.

게임개발자연대는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메갈리아라는 이름에 덧붙여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려하더라도, 성우의 해당 표현이 인간의 기본적 존엄이나 타인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게임들이 올바름에 대해 제대로 담아낼 여유를 가질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들은 생각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낙인찍기에 반대한 것이다. 그들이 메갈리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우린 알 수 없다. 오히려 성우를 교체하라며 넥슨에 항의한 게임 유저들처럼 메갈리아를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특정 의견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위험에 노출되어야 한다면 그건 비단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사람들만 해당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게임개발자연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일련의 탄압에 반대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에 가깝다. 메갈리아를 지지하느냐, 아니냐는 정말 부차적인 문제라고 봐야 한다.

이렇게 넥슨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향해 일부 누리꾼들은 '당신은 메갈리안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수준 낮은 사상탄압을 하고 있다. 지지선언을 한 웹툰 작가 및 게임 개발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보이콧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웹툰 플랫폼에 특정 작가가 지지선언을 했으니 자신이 지불한 돈을 환불하고 그 작가를 퇴출시키라는 협박을 게시판에 몰려가 집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웹툰 플랫폼인 <레진 코믹스>의 상황이 그러하다.

그러는가 하면 이런 로고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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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를 지지한 웹툰 작가를 보이콧하겠다는 로고가 만들어졌다 ⓒ 인터넷 커뮤니티


요지인 즉슨,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는 것은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것이고 이는 독자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이 로고는 과거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웹툰을 규제할 수 있는 심의제도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이를 반대하며 나온 로고를 변형 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시대착오적인 낙인찍기의 행렬을 보았다. 공안정국을 형성하며 '너 빨갱이지?' 라고 묻는 행태나,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십자가를 밟고 가라는 명령을 하는 것처럼 사상 탄압을 시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다. 그러나 메갈리아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지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두 사안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얼마든지 분리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동', '멸시'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사상검증을 하는 이들은 폭력적이기 그지없다.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이 메갈리아를 지지하느냐 마느냐와 무관하게, 창작자가 어떤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배제가 되지 않기 위해, 더 나아가 창작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더 이상 사상을 잣대로 마녀사냥하는 이들의 행동을 묵과해선 안 된다.
##창작자의_인권 ##넥슨_보이콧 ##김자연_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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