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가운데 핀 흰 꽃, 등잔걸이를 아시나요

녹색 논 가운데에 하얀 꽃을 피운 보풀

등록 2016.07.26 11:45수정 2016.07.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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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농촌 들녘입니다.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 전갑남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리면 즐겁습니다. 폭염에도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상쾌합니다. 농촌 들녘의 푸르름은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들녘은 많은 생명체들과 함께 합니다.

하얀 백로가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하천에서 노닐던 청둥오리는 자전거가 지나자 푸드득 내빼기에 바쁩니다. 참새는 수도 없이 몰려다닙니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시끄럽지만 싫지 않습니다. 가느다란 잠자리가 훨훨 날고, 풀벌레는 이리저리 뛰기도 합니다.

논에 웬 하얀 꽃이?

한참을 가다 논 가운데 하얀 꽃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게 눈에 띕니다.

'저게 무슨 꽃이야? 논에 무슨 하얀 꽃이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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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풀이 논에 꽃을 피워 듬성듬성 보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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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보풀꽃입니다. ⓒ 전갑남


나는 자전거를 세웠습니다. 짙은 녹색의 논에 듬성듬성 흰 꽃이 피었습니다. 꽃을 가까이서 보니 참 예쁩니다.

하얀 꽃은 아래로부터 층층으로 달려 위쪽에는 꽃이 피고, 아래 쪽은 시들거나 종자 같은 게 맺혀 있습니다.


바람결에 벼와 함께 하얀 꽃이 흔들립니다. 알을 베고 새끼치기를 한참하는 벼논에 하얗게 핀 꽃이 있다는 게 이색적입니다.

꽃이 있으면 벗이 찾아오는 법. 꽃에 이름 모를 나방이 날아들었습니다. 하얀 꽃에 앉은 주황색 나방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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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풀꽃에 나방이 날아들었습니다. ⓒ 전갑남


나방 녀석은 무슨 일로 대낮에 이 하얀 꽃을 찾았을까? 신기한 자연의 세계가 궁금합니다.

한참을 가다 논둑 콩밭에서 김을 매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논길에 세워놓고 일을 하십니다.

"할아버지, 저 논에 핀 하얀 꽃이 뭐예요?"
"저 꽃? 우리 클 땐 등잔걸이라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보풀이라고 하더구먼!"

대부분 논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으나, 어떤 논에는 듬성듬성 많이도 보입니다. 고개를 삐쭉 삐죽 쳐들고 꽃을 피워냈습니다.

할아버지는 들판에 혼자서 일하던 참에, 말동무라도 만나듯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호롱불 켜는 등잔 알지? 잎이 날카롭게 갈라진 저게 등잔걸이를 닮지 않았남? 그래 등잔걸이라고 불렀던 같아. 예전엔 김을 수차례 매서 저런 풀이 꽃피도록 놔두질 않았어! 세상이 바뀌니 등잔걸이 꽃 피는 것도 논에서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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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풀의 잎사귀. 화살쪽 처럼 뾰족합니다. 등잔을 걸어놓은 자리 같다고 하여 '등잔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 전갑남


말을 하면서도 할아버지는 연신 풀을 뽑습니다.

"할아버지 논에는 보풀이 보이지 않네요?"
"우리 논이야 없지! 우리 아들이 우렁이농법으로 농사짓거든!"
"우렁이가 보풀을 먹어치워요?"

"그럼, 처음 물 관리를 잘해주면 왕우렁이 녀석들이 먹어치우지!"
"참 신기하네요!"
"신기한 게 아니라 세상이 변한 거라니까!"

예전 농사지을 때는 논에 자란 김을 손으로 맸습니다. 초벌 두벌 맬 때는 호미로 긁어서 매고, 세벌 때는 손으로 뽑으면서 김매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흔하지 않던 풀이 논에서 꽃이 피고, 우렁이가 김매는 일을 대신해주는 농법이 등장했다면서요.

할아버지는 우렁이가 먹어치우지 못한 보풀은 직접 뽑아 버린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논에선 자라는 풀이 없는 것을 보니, 예전 아버지께서 부지런한 농사꾼 논에는 풀이 자랄 틈이 없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논에 핀 들꽃, 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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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풀 아래쪽에 암꽃이 피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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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핀 보풀꽃입니다. 위쪽에 수꽃이 핍니다. ⓒ 전갑남


보풀은 외떡잎식물로 여러해살이풀이라 합니다. 잎은 뿌리줄기에서 뭉쳐 나오는데 화살촉 같이 뾰쪽합니다. 잎자루가 상당히 길고, 한여름에 흰색의 꽃을 피웁니다. 꽃은 꽃줄기 끝 밑에서 위로 피어납니다. 꽃잎과 꽃받침은 3장씩으로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보풀은 암수 한 그루인 자웅동주(雌雄同株)입니다. 수꽃은 꽃줄기 위쪽에, 암꽃은 아래쪽에 달립니다. 식물에서 위쪽에 수꽃이, 아래쪽에 암꽃이 달리는 것은 꽃가루가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수정을 쉽게 하도록 한 것이랍니다. 말 못하는 자연의 지혜가 신비스럽습니다.

보풀은 연못이나 습지 등에서 주로 자랐는데, 요즘은 논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 와 나는 아내에게 보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내는 들에 핀 신기한 꽃을 신기한 듯 봅니다.

아내가 소녀 같은 말을 합니다.

"논에 핀 저 풀꽃 말이야, 꽃이 피고 나서 뽑으려면 미안하겠어요! 미리 뽑았으면 그런 맘이 안 들겠지만…."
#보풀 #들녘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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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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