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부가 세운 경기도 가평의 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인권침해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3일 가족들이 시설을 방문한 당시, 시설 측과의 마찰로 인해 인근 경찰들이 출동한 모습(뒤에 보이는 시설은 위 시설과는 상관없음).
유성애
천주교 소속 신부(서울대교구)가 본인이 세운 경기도 가평의 한 중증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장애인 학대 및 연금 횡령 등 불법과 전횡을 저지른 의혹이 제기됐다. 이 시설에는 작년에만 약 5억 원의 국가보조금이 지급됐다. 일부 직원의 내부고발로 인해 경기도와 가평군청 등이 뒤늦게 사태 파악에 나섰지만, 이 신부는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했던 일부 직원들은 지난 6월 한꺼번에 해고됐다. '불성실한 근무를 했다'는 게 해고 사유였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가평군청도 이는 '부당해고'라며 복귀시키라고 했지만, 신부 측이 해고 직원들을 못 들어오도록 시설 문을 잠그는 등 협조하지 않으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해고된 직원은 물론 입소자들의 가족까지 나서서 '문제적 인물'이라고 지목한 사람은 바로 30여 년 전 이 시설을 세운 박성구 신부(68세, 세례명 요셉)다.
해고 직원들에 따르면 이 시설에서는 불법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 자행됐다. 음식재료로 상한 닭을 주방세제에 씻어 먹이거나 유통기한이 2~3년 지난 의약품을 쓰는가 하면, 치과신경치료가 필요한 지적장애인의 치아를 직원이 임의로 결정해 발치한 일도 있었다는 것. 특히 박 신부가 시설에 입소한 지적장애인들을 시위에 동원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제는 이 시설이 속해 있는 상위 사회복지법인 기쁜우리월드(서울 소재, 등기부상 자산 총액 258억 원)가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박 신부가 속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마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사실상 방관하면서, 입소자 가족들은 "애꿎은 아이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항의하고 있다.
"신부가 하는 곳이라서 믿고 아들을 데려왔다"는 거주시설 이용자(2급 지적장애)의 어머니는 "천주교(서울대교구)도 군청도 모두 법인(기쁜우리월드) 탓만 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개·돼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입소자 가족도 "박 신부는 기부금을 강요하는 등 종교인의 탈을 쓰고 장애인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부금 강요나 회계부정 사용, 시설 이용자 인권 침해 등은 모두 명백한 현행법 위반 사항이다. 사실일 경우 최고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벌금형에 처한다. 그러나 박 신부 측은 18일 서면을 통해 모든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기부금 강요에 대해서도 "사제로서 나는 단 한 번도 가족들에게 돈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박성구 신부는 30여 년 전 이 시설을 세운 뒤 작년까지 시설장으로 근무했으나 12월 말 해임됐다. 해고 직원 중 한 여성은 "박 신부는 권한이 없음에도 여전히 시설장으로 모든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며 "그분은 입소자 가족들 몰래 장애인 연금을 빼서 자기 돈처럼 썼다, 이에 반발한 직원들은 다 잘리고 지금 추종자들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경기도 가평의 한 시골 마을, 중증장애인 40여 명이 모여 사는 이 시설에서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의혹①] 기부금 강요 : 입소자 가족들 "거부하니 퇴소 협박"
1976년 사제수품을 받은 박성구 신부는 1980년대부터 중증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법인(기쁜우리월드)을 세우고 수도회를 설립했다. 박 신부는 중증장애인시설 외에도 노인요양시설과 여성장애인시설 등을 경기 가평에 세웠고, 이 시설들이 모여 하나의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입소자 가족들은 "박 신부는 자기가 만든 왕국 안에서 교주처럼 살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고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신부님은 형제들 앞으로 나오는 국가보조금과 연금을 마치 자기 돈처럼 유용했고, 입소자 형제들을 볼모로 삼아서 가족들에게 기부금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장애인 형제들에게 '소풍 가자, 놀러 가자'고 속여서 시위에 동원했어요."작년 9월 직원으로 입사했다가 최근 해고된 나형윤(33)씨의 말이다. 나씨도 양쪽 팔꿈치 아래가 없는 중증장애인이다. 그는 "보다시피 저도 1급 장애인"이라며 "성직자 탈을 쓴 신부가 장애인을 이용해 장사하는 걸 보고 참을 수 없었다, 같은 장애인으로서 인권 유린이라고 생각해 제보했다"고 말했다. 입소자의 가족을 취재한 결과, 일부는 실제 신부 측으로부터 기부금을 강요당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거주시설은 가평에 있지만 시설입소자의 가족은 전국에 퍼져 산다. 지난 6월 5일, 입소자 가족 20여 명이 아이들을 만나러 시설에 모였다. 박 신부 측 직원으로 알려진 K씨(70대 여성)와 S씨(40대 여성)가 당시 가족마다 빈 봉투 2~3매씩을 나눠주며 "신부님 활동비가 필요하니 기부금 봉투에 사인하라"는 식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아들(28세, 2급 지적장애)이 시설에 있는 이태호(59, 서울 거주)씨는 "(회의 때 시설 직원들이) 신부님 돈이 필요하니 가족들도 상납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면서 "저를 비롯해 가족 다수가 이를 미뤘는데, 다음날 시설에서 바로 '아드님 가정보호 필요'라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보복성 퇴소 협박"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현행법에 따르면 사회복지 지원을 위해 기부금을 모집하는 경우에도 기부자의 의사에 반해 기부금품을 모집해서는 안 된다. 또 시설장애인 금전관리지침에 따르면 원래 금전 지출 등에 있어서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아들 김아무개(34, 2급 지적장애)씨를 시설에 보낸 어머니 도아무개(61)씨도 비슷한 협박을 당했다고 한다. 도씨는 "신부 측은 금액이나 용도도 말해주지 않고 사인만 하라고 했다, 입소자들 돈을 마음대로 빼겠다는 건데 이건 '백지 수표'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반발하자 다음 날 그에게도 같은 내용의 '퇴소 요청' 문자가 왔다고 한다.
도씨는 "그 날 대표로 나섰던 제게 보복을 하겠다는 의미"라며 "박 신부는 예전에도 아이들 통장에 손을 댔다가 걸린 적이 있다. 예전엔 불법인 줄 잘 몰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