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넘어가는 들판의 무수한 송전탑과 송전선
이원영
도보순례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효과가 훨씬 크다. 하지만 혼자하는 순례도 나름의 효과가 있다. 걷는 리듬을 타고 가다 보면 명상을 하기 쉽다. 그리고 걸으면서 더욱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금 후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본보기를 보이는 것 아닌가? 아이들에 자신들의 자식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전례를 우리가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 몹쓸 짓을 하는 것 아닌가?' 있을 수 없는 금기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고, 그걸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독일인들이 일찌감치 그런 윤리적인 문제를 간파하였기에 후쿠시마 핵 사고 직후 '17인의 윤리위원회'를 구성한 것 아니겠는가? 다음 날 전북대 교수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분들도 공감했다.
"맞네요. 핵 발전소 문제를 방관하는 것은 양심을 파괴하는 것이네요." 그러는 동안에 누군가가 물었다.
"만약 새 대통령이 탈핵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핵 마피아가 없어질까요?" 얼른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어떻게요?" "전국의 열 개쯤 되는 원자력공학과를 원전안전 및 해체학과로 바꾸게 하면 됩니다." "....." "지금 원전해체 시장이 엄청 큽니다. 전 세계 핵발전소가 445개 있는데,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로는 향후 50년간 1000조 원 시장이 형성될 거랍니다. 연간 20조 원 시장이죠. 이명박 정권이 아랍에미레이트에 5조 원짜리 1기 수출하려고 5년간 공들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시장입니다. 이 주제로 3년 전에 불교계와 원불교계가 공동주최로 국제 세미나도 개최했지요. 수명이 다한 원전의 조기 해체를 유도함으로써 안전을 적극적으로 확보해가는 전략으로 말입니다." "......" "그런데도 우리는 이쪽 분야에 기술도 없고 전문 인력도 제로입니다. 서울대와 한양대만 해도 해체 과목 자체가 없습니다. 다른 학교는 볼 것도 없지요. 고리1호기 폐쇄 결정되었으니 이를 필두로 앞으로 50년간 스무 개나 해체해야 하는데 인력 배양도 못 하고 있어요. 학생들 생각하면 이런 블루오션으로 가야죠." "......" "해체 분야 외국인 저명기술자와 교수를 초빙하고 국내 기존 연구자도 원전 해체 쪽으로 영역을 확장해서 대응하면 되지요. 요는 밥그릇 뺏는 게 아니라 밥그릇 모양만 바꾸라는 건데, 이것도 거부하는 마피아들이 있어요." 필자가 들고 다니는 현수막에 적혀 있는, '날 적마다 좋은 국토'라는 말은 사찰에서 새벽예불을 올릴 때 외우는 '이산혜연선사의 발원문'에 있는 구절이다. 방사능 오염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지속된다. 윤회로 새 세상에 태어나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세상을 만날까봐 두렵지 않은가, 라는 경고도 함축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필자의 완주에서 익산까지의 순례 기사를 보고 용인에 사는 장동범님이 달려와 함께 걸었다. 어느 식당에 들렀는데 그 주인이 좋은 일 하신다고 밥값을 받지 않는다. 익산을 거쳐 군산 가까이에 있는 임피 부근의 들판은 온갖 종류의 송전탑과 송전선들로 가득했다.
석 달 전 순례 때 비해 확연히 느낀 것은 이제 우리도 태양광 혁명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농촌의 웬만한 건물에는 대용량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값이 작년의 절반 값인 데다, 최근 정부 보조금이 상당한 수준으로 지원되었다고 한다. 한눈에 보아도 현저히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