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주인공이 말하는 법 이야기

[서평]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등록 2016.08.12 09:26수정 2016.08.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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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기자협회 등이 김영란법이 위헌이라는 이유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것에 대해 각하 및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은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김영란법의 제정을 준비한 것이 2012년이니, 4년간의 존폐 논란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장으로 활동하였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추진한 법안이었기에 약칭 '김영란법'으로 불리게 되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임직원 등의 금품 수수를 금지하여 공정한 직무수행을 확보하는 법안이다. 공직자 등에 부정한 청탁을 하는 것을 막고,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 여부에 관계없이 1회에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아직도 규제 범위에 대하여 다소간의 논란이 있지만, 김영란법을 통해 자신이 사는 나라가 부패없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 부정과 청탁 대신 법에 따른 원칙이 실현되는 세상을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런 세상을 위해 노력해 온 김영란법의 주인공, 김영란 전 대법관이 법치주의에 대해 말하는 책이 있다. 바로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다.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 김영란, 풀빛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는 30년 가까이 판사로 일하고, 여성으로서 최초로 대법관을 지낸 뒤 국민권익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김영란법을 만들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쓴 책이다. 법치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알아두고 고민해야 할 대상이지만 아직도 대중에게 낯선 '법치주의'에 관한 생각을 담았다. 청소년도 읽기 쉽도록 집필된 책의 보급판이기 때문에 읽기도 전에 어려울까 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책 표지에는 '법치주의와 정의를 돌아보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법을 하나의 그릇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채울지 선택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내용이 담기는 틀인 동시에, 그릇을 채우는 사람도 그릇의 형식에 구속되고 만다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법에 다양한 내용이 담기지만, 한 번 법으로 만들면 법을 만든 사람도 구속된다는 점에서 법은 그릇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릇의 주인들은 이 그릇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은 당연히 국민들이다. 국민들은 이 그릇을 민주주의에 걸맞는 내용물로 채워서 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는 항상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는 바로 이런 법의 형식과 내용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법의 기원과 역사를 다룬다. <돈키호테>와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라는 유명한 문학 작품의 예를 들며 법이라는 것은 대체 왜 필요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고찰하는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근대법의 토대가 된 홉스와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살피고 한국의 근대법은 어떻게 왜곡되었는지도 논한다.

2부에서는 법과 정의의 관계와 다양한 정의관을 살핀다.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을 비롯한 문학 작품을 언급하며 정의관의 문제와 헌법 정신의 의미를 파고든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정의의 문제는 헌법 정신의 문제와도 관련이 깊으며, 정의의 원칙에 관한 논쟁은 헌법정신의 해석에 관한 논쟁이기도 함을 밝히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확립되었고, 사람들의 다툼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바탕으로 다스림을 받는 피지배자들이 직접 만든 법이며, 법 가운데 헌법이 최고법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사회에서는 헌법이 '시민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 정의인지 판단할 때 헌법정신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개별 사건이 헌법정신에 어긋나는지를 따져 보는 것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지요. -117p


3부에서는 정의를 제대로 법에 구현하고 공정한 사법 시스템을 이룩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논하고 있다. <춘향전>을 풀어 사법제도의 성격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 이해를 돕는다.

에필로그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은 법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절대 불변의 것도 아님을 강조한다. 법은 시대에 따라 바뀌며, 나라의 주인들인 국민들이 찾아가는 것이지 사법기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법을 대해야 할지 함축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를 규율하는 법과 정의는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한 시민이라면 법을 배운 전문가나 법학과 학생이 아니더라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다. <이솝우화>와 <돈키호테>, <동물농장>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을 언급하며 최대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풀었다. 정의관과 관련한 장에서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도 언급된다.

법치주의에 관하여 쉽게 풀어쓴 책 자체도 드물지만, 적절한 비유를 통해 동서양과 문학작품을 넘나드는 책은 더욱 드물다. 이 책은 230p 내외의 분량으로 법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지 생각하게 해주는 시민의 필독서다. 평소 법에 관심이 없었지만 김영란법 논쟁을 통해 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보급판) - 법치주의와 정의를 돌아보다

김영란 지음,
풀빛, 2016


#김영란 #정의 #법치주의 #법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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