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진료 가능 달빛어린이병원, 왜 서울에만 없나

80% 넘는 만족도에도 불구 사업 확장에 난항 겪어... 의사단체 "예산 낭비"

등록 2016.08.12 16:11수정 2016.08.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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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평일 오후 11~12시, 휴일 오후 6~10시까지 매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진료하는 달빛어린이병원을 2014년부터 도입했다. ⓒ 보건복지부


서울에서 네 살 난 딸을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정소영(가명, 43세)씨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걱정이 크다. 직장에 다니다보니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퇴근 후에 갈 수 있는 병·의원이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가 40도가 넘는 고열로 신음할 때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에서는 감기 때문에 나는 열이라며 해열제와 간단한 감기약을 처방해 주었다. 응급환자가 아니라서 진찰료와 검사비를 포함해 10만 원 정도를 냈다. 정씨는 아이들 특성상 밤에 열이 오르고 앓는 경우가 많아 밤에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의원의 필요성을 크게 절감하고 있다.

2014년에 도입된 달빛어린이병원은 평일 오후 11~12시, 휴일 오후 6~10시까지 매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진료하는 병원이다. 응급실보다 비용 부담이 적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하기 때문에 이용자 만족도는 80%를 넘는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3명을 보유하고 365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보건복지부에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4개월간의 시범사업 후 올해 9월, 30개 의료기관으로 확대하려고 목표를 세웠지만 단 한 곳만이 신청했다. 그동안 15개 의료기관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나 지금은 11곳만 남았다.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에는 한 곳도 없고 수도권 전체를 통틀어 경기도에 두 곳 있다.

달빛어린이병원 사업 확대가 어려운 이유

높은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달빛어린이병원 사업 확대가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와 대한소아과학회 등 관련 의사단체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다. 달빛어린이병원은 동네 병·의원 등 지역 병·의원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낮 진료를 하는 소아청소년과 병·의원의 환자가 급감할 것이라는 이유다.

급기야 달빛어린이병원에 참여하는 의사들을 해당 단체와 학회에서 탈퇴시키는 등의 조처가 취해졌다. 결국 달빛어린이병원은 전문의 채용이 어려워졌고 그나마 있는 전문의들도 이탈하게 되어 병원은 지정을 취소하게 되었고 시범사업 때보다도 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올해 3월 2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소아 야간 휴일 진료체계'를 주제로 연구발표 및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토론회를 계획하며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대한소아과학회에 참여를 요청했지만 두 곳 모두 불참했다.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연구를 진행한 서울대 곽영호 교수팀은 달빛어린이병원의 확장된 개념인 '시간 외 진료(AHC)' 서비스 개념을 들어 설명했다. 병원의 참여 확대를 위해서 곽 교수는 조합형, 공동 운영형, 병원형 등 다양한 형태의 '시간 외 진료(AHC)' 서비스를 용인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료 장소와 진료비 일부를 국가가 부담하는 정책적 지원과 함께 '시간 외 진료' 수가를 별도로 책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팀이 연구 끝에 내놓은 5가지 확대 방안은 환자 본인부담금 3000~8000원 인상, 지역 병원 당번제, 가정의학과 및 내과로 소아진료 확대, 중소병원의 소아전용 응급실 운영, 야간·휴일 소아진료 관련 전화 의료 상담 등이다.

의료계 즉각 반발, 정부 상대로 감사 청구 예고해

이를 바탕으로 지난 5월 10일,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5차 회의에서는 '소아환자 야간ㆍ휴일진료 수가체계 개선' 방안을 의결했다. 개선안은 365일 평일 18~24시, 휴일 09~21시에 진료하는 소아 야간ㆍ휴일 진료기관 및 약국(달빛어린이병원 및 약국)을 운영하면 이 기관에 야간진료수가를 추가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진료수가는 의료기관 환자진료당 9610원, 약국 조제당 약 2110원으로 환자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2690원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야간ㆍ휴일 진료모델 등은 참여 활성화를 위해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보건복지부는 7월 27일, 각 시ㆍ도 및 참여기관 관계자를 대상으로 달빛어린이병원 정책설명회를 개최하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8~9월 중에는 사전의향조사를 거쳐 10월 신규 공모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신규 공모는 종전 병원 중심의 운영형태를 의원급 의료기관의 순환당직, 연합운영 등의 형태로 보다 다양화했다. 뿐만 아니라 공모조건을 완화하여 1인 진료 의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소아청소년과의 신청이 없는 지역은 소아진료가 가능한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 및 병의원도 일정요건 충족시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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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달빛어린이병원 신규 공모에서 당직운영, 연합운영, 요일제 운영 등 운영 형태를 다양화했다. ⓒ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의 공모 추진 계획이 밝혀지자 의료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8월 10일,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는 정부를 상대로 감사 청구를 예고했다. 달빛어린이병원이 생기면 동네 병·의원이 폐업 위기에 처하고 의료의 질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정부가 불필요한 곳에 예산을 낭비한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의료계의 행태에 부적절하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업이 원만하게 진행되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며 "심야·공휴일 진료 불편과 이로 인한 응급실 의료비 추가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 몫이다, 정부와 개원가가 대화를 통해 한 발씩 양보하고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것을 거듭 강조했다.
#달빛어린이병원 #소아 응급 의료 체계 #소아청소년과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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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노동자.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으나 암 진단을 받은 후 2022년 <아프지만, 살아야겠어>, 2023년 <나의 낯선 친구들>(공저)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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