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조선인의 존재, 일본인으로서 부끄럽다"

일본인 시민단체 고려박물관, 한국인 원폭피해 설명 패널 전시중

등록 2016.08.23 11:41수정 2016.08.2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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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인 피폭자의 존재는 일제 식민지 지배 탓이며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맞은 것은 전쟁을 일으킨 천황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한 일제국주의의 전쟁범죄와 천황제를 용인한 일본인의 무자각과 무책임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와 데루다카(塙輝高, 도쿄 거주)

"인터넷을 통해 고려박물관에서 피폭 관련 전시회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히로시마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조선인 원폭 피해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일본인으로 매우 부끄럽다." -아리타 고타로(有田幸太郎, 시코쿠 거주)-

오가와 테츠오 한국인 원폭피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오가와 테츠오 씨 ⓒ 이윤옥


아리타 고타로 멀리 시코쿠지방에서 전시장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는 아리타 고타로 씨(옆얼굴) ⓒ 이윤옥


이는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폭 71년 한국·조선인과 일본(被爆 71年 韓国·朝鮮人と日本)> 전시회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의 이야기다. 특히 아리타씨는 멀리 시코쿠 지방에서 '피폭전시회'를 보기 위해 도쿄로 올라와 이날 고려박물관을 찾았다고 했다.

어제(21일) 오후 2시 기자는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을 찾았다. 고려박물관(관장 히구치 유우지)을 만든 사람들은 양심 있는 일본인들로 아베정권을 비롯한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이 "침략전쟁은 없었다. 위안부의 강제성은 없다. 독도는 일본땅이다"를 주장하는 것에 쐐기를 박고 과거 한일간의 역사를 농락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면서 "침략전쟁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일본은 한국에 사죄하고 과거 침략 역사를 낱낱이 공개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제는 일요일임에도 박물관에는 히구치 관장을 비롯하여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십여 평의 전시장에는 제법 많은 관람객들이 온몸에 원폭(일본에서는 피폭이라 함)을 맞고서도 방치되었던 조선인들의 원폭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밝힌 전시용 패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서정우 14살에 강제징용으로 악명높은 군함도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서정우 씨의 생전 모습 ⓒ 이윤옥


까마귀 까마귀라는 이 작품은 자세히 보면 흰 치마저고리가 그려져 있다.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을 차별하여 치료와 시신수습을 방치하여 까마귀가 달려든 것을 이미지화하여 그린 그림 ⓒ 이윤옥


"강제로 연행되어 와서 일본인과 똑같이 원폭을 당한 조선인들은 치료와 보상은커녕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비조차 평화공원 내에 세우는 것을 거부당했지요. 할 수 없이 평화기념공원 밖 한쪽 구석에 위령비를 세운 게 1970년으로 이후 '평화기념공원 내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이전' 투쟁의 결실로 1999년에서야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으니 200미터 이동에 29년이란 세월이 걸렸지요."

이는 전시장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 오가와 데츠오(小川哲生)씨의 설명이다. 오가와씨는 4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일본정부의 한국인 피폭자들에 대한 차별과 은폐의 역사를 알게 되어 그때부터 강도 높은 공부를 해온 끝에 이번에 동료 10명과 함께 매주 1회씩 교대로 고려박물관에 와서 전시 중인 <피폭 71년 한국·조선인과 일본 (被爆 71年 韓国·朝鮮人と日本)> 의 설명 자원봉사를 맡고 있다고 했다.


오가와씨의 설명은 한국인인 나도 혀를 찰 정도로 자세했다. 오가와씨는 내친김에 원폭 피해자가 많았던 경남 합천에도 작년에 방문하여 원폭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증언을 들었다고 했다.

하나와 데루다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하나와 데루다카 씨는 조선인 원폭피해자들을 방치하고 있는 일본정부를 강한 어조로 비난했으며 자신의 얼굴이 실려도 좋다고 당당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 이윤옥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하나와 데루다카씨는 조선인 원폭피해자들을 방치하고 있는 일본정부를 강한 어조로 비난했으며 자신의 얼굴이 실려도 좋다고 당당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왜 이런 일을 자원해서 하시는지요? 일본 우익들의 방해는 없나요?"라고 오가와씨에게 물었다.

"사실 저는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한 역사를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4년 전 원폭 피해자들 가운데 한국인들이 많이 있었고 이들이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아예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연구회'를 만들어 공부하다 보니 한국인의 원폭피해 진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작은 힘이나마 일본인에게 진실을 알리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 자원봉사자로 뛰고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헤이트스피치(혐한주의자)들이 활개를 쳐서 걱정이며 이는 일본 국민으로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요."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설명한 패널 전시회를 통해 "조선인 원폭 피해의 진실"을 밝힌 이번 전시회는 일본정부가 눈감고 있는 역사적 진실의 한 페이지다. 앞으로도 영원히 일본 정부가 '눈감고 있을 진실'이고 보면 상당한 의미를 지닌 전시일 것이다.

이번 전시전체 피폭자 수회에서 밝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한국·조선인 피폭자를 보면 다음과 같다.(<피폭 71년 한국·조선인과 일본(被爆 71年 韓国·朝鮮人と日本)>6쪽 인용)

피폭 한국조선인 피폭 피해자수 ⓒ 이윤옥


전시장 패널 가운데 눈에 익은 사진 한 장이 시야에 들어왔다.가운데 눈에 익은 사진 한 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군함도 사진이다. 조선인 강제연행의 극한의 노동 현장이었던 군함도(일본명 하시마 '端島') 사진과 함께 피폭자인 서정우씨의 증언이 새겨져 있었다.

"청춘을 돌려줘라, 건강을 되돌려줘라, 차별을 없애라"고 외치던 서정우씨는 이제 작고했지만 그는 14살에 군함도에 강제 연행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72살로(2001년) 숨을 거두기까지 군함도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했다.

삼십여 분 넘게 단 1분의 휴식도 없이 자원봉사자 오가와씨는 일본인 관람객에게 '원폭 피해를 입은 한국인에 대한 설명'에 열정을 쏟았다. 전시장을 찾은 이들 역시 잠시도 그의 설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일부러 고려박물관으로 발걸음을 한 일본인들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 71년을 맞아 일본이 두 번 다시 이런 전쟁 놀음을 해서는 안 된다" 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군함도 군함도에서 서병우 씨는 생생한 증언을 하며 평생을 보냈다. ⓒ 이윤옥


관람객들 전시장을 찾은 일본인 관람객들은 기꺼이 기자와 사진을 찍어주었다. 맨 왼쪽이 기자 ⓒ 이윤옥


그런 의식을 확고히 지니고 있는 고려박물관의 이번 <피폭 71년 한국·조선인과 일본 (被爆 71年 韓国·朝鮮人と日本)> 전시회는 10월 30일까지 열리는데 도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물론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들려보면 좋을 일이다.

<전시안내>
*전시장소: 도쿄 고려박물관, 신오쿠보 한국수퍼 '광장' 맞은편
*전시기간: 2016.6.29(수) ~ 10.30(일)
*전화: 도쿄 03-5272-3510

*고려박물관(高麗博物館)은 ?

1.고려박물관은 일본과 코리아(한국·조선)의 유구한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며,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지향한다.

2.고려박물관은 히데요시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며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일본과 코리아의 화해를 지향한다.

3.고려박물관은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민족 차별 없는 공생사회의 실현을 지향한다.

위와 같은 목적으로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시민들이 NPO 법인으로 설립한 박물관(관장, 히구치 유우지)으로 1990년 9월 <고려박물관을 만드는 모임(高麗博物館をつくる会)>을 만든 이래 올해로 26년을 맞이하며 전국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봉사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 관련 각종 기획전시, 상설전시, 강연, 한글강좌, 문화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1월~3월)에는 일본 최초로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을 연바 있다.

덧붙이는 글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고려박물관 #원폭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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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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