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나올 일이 없는 봄, 가을 옷
정혜윤
초등학교 때는 흔히 그렇듯 엄마가 사주는 옷, 혹은 친척이나 이웃에게서 물려받은 옷을 입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옷 욕심이 생기기 전까지 '취향'이란 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취향'이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유행을 따라가야 옷을 잘 입는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와 친구들이 입는 옷, 신는 신발은 모두 비슷했다. 한때는 청바지, 단색 셔츠, 모카신이 유행하기도 했고, 카고 바지와 알 수 없는 영어가 잔뜩 쓰인 티셔츠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옷들은 대부분 유행이 지나고 나면 집에서 막 입는 옷이 되거나 버려지고 말았다.
성인이 되고나서부터는 '실험'과도 같은 옷 입기가 시작됐다. 나는 이 시기를 '패션 과도기'라 부른다. 갑작스러운 주변 상황의 변화와 함께 어울리지 않는 어른스러운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에스닉한 스타일, 옷가게 세일 코너를 누비며 고른 서로 어울리지 않는 옷들로 맞춰 입기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앞선 '실험'의 실패인지 결과인지 모를 패션인 청바지에 후드티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그리고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청바지에 후드티를 더 이상 고집 할 수만은 없어 정장과 일상복 사이의 어중간한, 어른처럼 보일만한 옷을 고민하며 고르게 됐다. 옷을 고르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예전처럼 실험적이거나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편안함'과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는'것이 되었다.
한때는 옷이 그 사람을 표현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옷은 사람에 따라 그냥 '옷'일 뿐이기도 하다.
3. 옷을 버리는 일, 옷을 사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