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수 있다고? 늙지 않는 생명체가 있다는데...

[김성호의 독서만세 95] <우리는 모두 불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등록 2016.09.05 11:36수정 2020.12.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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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불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책 표지 ⓒ 청어람미디어


도발적인 제목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를 쌓은 학자들과 나눈 대화를 엮은 책 제목으로는 더욱 그렇다. 불멸이라니, 저 진나라 시황제부터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싯다르타, 신의 아들을 자칭한 예수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 어느 누구도 불멸한 인간은 없었다는 게 상식이 아니던가. 그런데 우리 모두가 불멸할 수 있다는 책의 제목은 과연 무슨 뜻일까. 궁금해졌다.

책은 그 첫번째 장부터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생명체를 연구하는 학자, 노화의 유전적 메커니즘을 연구해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블랙번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다.


책의 저자이자 저명한 과학저널리스트 슈테판 클라인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온 불멸을 책의 첫 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그가 찾은 학자가 분자생물학자 블랙번 교수다.

섬모충 연구를 통해 생명체의 수명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발견한 그녀는 텔로미어라 이름붙여진 유전자를 연구해 인간이 불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넘본다. 섬모충과 같은 노화하지 않는 생명체와 이를 가능케 하는 텔로미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이 불멸에 다가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블랙번을 시작으로 사회학자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의학자 데틀레프 간텐, 발달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 꿈 연구자 앨런 홉슨,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 철학자 토마스 메칭거,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 동물학자 제인 구달, 윤리학자 피터 싱어, 생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까지 모두 11명의 저명한 학자들을 찾아 대화를 나눈다.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이들과 만나 클라인은 때로는 경청하고 때로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충실하게 대화하려 노력한다. 그 결과로 나온 11편의 대담은 인간을 둘러싼 쉽지 않은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내놓고 있다.

클라인이 만난 11명의 학자는 연구주제와 관심분야, 기반이 되는 학문 등이 제각각으로, 대담집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사회학자 크리스타키스는 인간이 절대적이라 할 만큼 주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심리학자 고프닉은 아이의 사고가 어른의 사고체계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부분이 있다는 주장을 편다.


이어 철학자 메칭거가 자아인식과 자기기만 등의 작용이 진화의 산물이라 주장하며 유전학자 페보는 유전의 영향이 문화의 영향에 비해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고 기존의 통념에 반박한다.

얼핏 서로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대담은 중반을 넘어서며 하나의 줄기로 꿰어진다. 종과 개체를 가리지 않고 영원히 존속하려는 생명체의 분투가 바로 그것이다. 노화하지 않는 생명체를 연구해 개체의 영원한 존속 가능성을 탐구한 블랙번, 다양한 심리·사회·문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종의 존속가능성을 높이는 여러 기제를 연구한 학자들, 의식의 전제조건을 모두 파악해 이를 컴퓨터로 옮길 수 있다면 인간 개체가 그 안에서 불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코흐까지.

여러 학자가 평생에 걸쳐 얻어낸 학문적 성과가 영원이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모습이 그 자체로 흥미롭다. 존재와 영원, 그에 이르는 방법으로써의 진화. 이 세 단어가 클라인이 11명의 학자와 나눈 대화를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겠다.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이 시대 최고의 석학들에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로부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답변을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 모두가 그들의 답변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것 같지는 않으나 이들이 클라인의 질문에 응답하는 과정을 찬찬히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지적 자극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에 실린 클라인과 학자들의 대담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독일 주간지 '차이트 마가진(ZEIT Magazine)'에 연재됐다. 클라인은 이에 앞서 역시 차이트 마가진에 2007년부터 2009년까지 13명의 학자와 나눈 대화를 연재했는데 이 역시 책으로 출간됐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클라인의 방식이 마음에 든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찾아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 세계 최고의 과학자 11인이 들려주는 나의 삶과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청어람미디어, 2015


#우리는 모두 불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청어람미디어 #슈테판 클라인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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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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