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자영업이라는 꿈을. 그 꿈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pixabay
초창기엔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쉽게 봤던 자엽업이 내겐 쉽지 않았다. 한동안 책임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업이 생각보다 어려운데도 주변에 내색도 못했다. 욱한 마음에 퇴근 후 만나 내색이라도 하면 "편한 소리 하지 말라"는 말만 들었다. 세상사 누구나 힘들겠지만 "자영업자는 그래도 나은거야"라는 핀잔. 자신들은 정말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며 가득한 푸념들. 푸념하러 나갔다 잔소리까지 덤으로 얻은 술판. 적어도 10여 년 전 그 당시엔 그랬다.
영업도 해봤고, 채권회수, 사무직, 구매자재, 막노동 등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영업도 진저리가 났고, 채권회수도 사람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탈출구로 난 자영업을 택했다. 자영업을 선택하면서 이제 영업, 추심업무 등을 다신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기뻤다.
어스름한 저녁 난 혼자 분위기 잡고 술 한잔 하면서 다짐했다. '이제 자유고, 내 세상이다' '돈 많이 벌어서 그동안 신세진 사람들에게 갚아가며 살자'고 여러 번 곱씹었다. 그러나, 그 행복한 꿈은 그날 하루뿐이었다.
내 꿈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급하다며 닦달하는 손님. 무엇인가 조금 색이 다르다며 클레임을 거는 손님, 하루종일 이것 저것 수정을 요구하는 손님. 게다가 수시로 문제가 생기는 컴퓨터까지.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장사란 것이 꾸준히 바쁘거나 일정량의 일이 지속적으로 들어오면 상관이 없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쉬고 싶을 때 일이 들어오고 바쁘고 싶을 때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초창기에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회사와 달리 도움을 청할 동료도 없었다.
결국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다신 안 한다고 결심했던 바로 그 영업. 그 진저리나던 영업을 자영업을 시작하며 또다시 시작했다. 또한 절대 안 하기로 한 채권회수도 시작했다. 자영업은 자금회수가 아주 중요했다. 그저 납품을 하고 결재만 기다려선 안됐다. 제 날짜에 입금이 안 되면 독촉도 해야 하고 찾으러도 다녀야 했다. 결국 일도 하고 납품을 하고 영업도 하고 채권회수 하는 일도 내게 추가됐다.
적자보다 힘들었던 건 '왕에 대한 실망' "전 클라이언트가 바닥에 침을 뱉고 핥으라고 해도 할 마음의 준비가 돼있습니다."
갈팡질팡하던 사업초기 영업에 닳고 달았다는 누군가 내게 해준 조언이다. 그는 "고객은 왕"이라며 "비용을 지불하며 먹고 살게 해주는 고객을 왕대접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정도의 마인드가 아니면 자영업에서 자리잡기 힘들다고 했다. "큰 금액의 거래를 하는 손님에게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라고 그는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건 아니지 않나'란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도 '수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며 그의 조언대로 따라 보기로 했다. 게다가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보았던 장사꾼의 성공스토리도 그랬다. 악당과도 같아 보이는 손님이나 거래처를 만나 수많은 수모와 우여곡절을 겪고 단단한 거래처가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말이다.
초기 "손님은 왕"이라는 말처럼 무조건 손님을 왕 대접을 했다. 돈이 많고 마진을 많이 남겨주면 더 특별한 왕이었다. 그러다 보니 돈이 안 되는 손님이 올 경우 그저 귀찮고 짜증만 가득했다. 게다가 내가 왕처럼 모시는 손님들은 진짜 왕처럼 행동했다. 성군이 아닌, 폭군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손님은 소액이고 왕으로 모시는 손님은 폭군 같으니 하루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짜증과 화가 가득 차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가 모셨던 그 당시 왕들은 이랬다. 쉴새 없이 지시하고, 사소한 클레임 제기하는 것이 마치 그들의 현명함을 증명하는 의식과도 같아보였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는 그들. 허나 그 기준은 한결 같지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했다. 그들이 필요한 시간이면 새벽이고 밤이고 없었다. 그저 그들을 왕처럼 모시면 모실수록 나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그저 표피만 사람인 장사치가 되고 있었다. 그와 나는 업종이 달라서였을까? 적어도 그의 조언은 내게 맞지 않았다.
죽음으로 내몰려 사라지는 자영업자들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던 자영업 초기. 사소한 개인들이 죽음과 가까워짐을 느꼈다. 주변의 누군가의 투신 소식이 들렸고, 스스로 목을 메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도 듣게 됐다. 장사밖에 할 줄 몰라 사기를 당하고, 외롭고 힘들어 사람을 쉽게 믿어 홀라당 사기당하는 사람도 봤다.
혹자는 자영업의 과도한 스트레스에 폐인이 됐다는 소문도 들었다. 물론 이런 모습이 자영업자에 한해서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허나 수많은 이들이 그 아픔을 함께 인지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해 더 외롭고 힘들게 존재하고 있다. 세상까지 떠나는 그들에게는 최후의 순간도 함께하지 못했다.
요새 흔히 말하는 '열정 페이', 그 열정조차도 상상 밖의 단어였다. '열정 페이'는 대기업의 잘못된 전유물이고 영세 자영업자는 '열정'마저 망각한 지 오래된 듯했다. 오히려 어려운 형편에 알바에게 무시당하는 구석에 서 있기도 했다. 열정을 잊고 생존의 경계에 서 있는 사장들. 이제 알량한 사장이라는 직함은 거추장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작은 자영업자들은 대게 자신 혼자나 가족 아니면 알바 정도와 함께 일을 해나간다. 그들은 동료라기보다 자영업자인 자신이 보호해야 할 직원들이다. 자신이 힘든 걸 내색하는 순간 그 치킨집이든 식당이든 불안함으로 요동친다. 생활 자체도 자유로운 부분이 많아 자신을 잘 콘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망가지기 딱 좋은 게 자영업일 수도 있다. 보호받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용서받지 못하는 자 바로 자영업자가 아닐까.
어깨가 무거운 하루. 누군가 죽음의 소식이 들렸다. 옥상에서 투신한 어떤 이의 소식. 그들에겐 자신의 목숨 값은 현실에 비해 너무도 가벼웠다. 삶이 그만큼 무거웠던 것일까? 가벼운 삶이 하나 둘 하늘로 날아올랐다. 사연 많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기고서. 자영업을 시작한다며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미소를 가진이가 다녀갔다. 그의 부담감이 무거운 뒷모습으로 비춰졌다.
갑질 하는 돈이 아닌, 왕의 인격을 가진 자가 바로 진짜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