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이주민센터 상임대표 정호 스님
송하성
"왜 이 일을 하냐구요? 인간사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됐습니다. 법과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종교계가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더불어 사는 것이고 그래야 건전한 사회가 되겠지요."
정호 스님은 강한 듯 유연하고 부드러운 듯 억센 스님이다. 10년 전 외국인주민을 지원하는 일을 시작해 비영리 민간단체 '행복한이주민센터'를 설립했고 최근엔 불교계의 대표적인 이주민 지원단체인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았다.
거기다 대각사 회주(총책임자), 조계종의 사법기구인 재심호계원의 위원도 맡고 있으니 절간을 호령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결혼이주여성이 아기를 안고 한국어를 배우러 오면 엄마는 교실로 들여보내고 혼자서 갓난아이를 본다.
한 번은 송년 행사에 베트남 전통춤을 추기로 한 엄마가 아기를 안고 왔길래 아기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술을 마시고 와서 소란을 피웠다. 정호 스님은 아기가 깨지 않도록 문을 닫은 뒤 "네 자식을 내가 보고 있다"고 호통을 쳐 돌려보냈다. 아기를 안은 부드러운 팔에서 억센 소리가 나오다보다.
너와 나의 목소리, 이주민의 목소리정호 스님이 이주민 지원 일을 시작한 2006년만 해도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는 많아서 임금체불, 폭행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도움을 받을 곳이 없으니 그가 나선 것이다.
그렇게 행복한이주민센터를 만들어서 1년 동안 활동을 하니 결혼이주여성들이 덩달아 찾아왔다. 없는 돈을 들여 센터를 확장하고 이주민을 받았다. 오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위탁 받은 2012년에는 이용자가 3배가 늘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오산시의 도움을 받아 센터를 이전했다.
그리고는 중도입국 자녀(엄마의 재혼으로 뒤늦게 한국에 들어온 아이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넉 달 동안 한국어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입학이나 편입서류를 뗄 수 없는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방황했다.
그래서 정호 스님은 2013년에 위탁형 다문화 대안학교인 '오산 행복한학교'를 개교했다. 해마다 갈 곳 없는 중도입국 아이들이 행복한학교에서 학업의 꿈을 이어간다.
그러고 보면 그가 지나온 10년은 한국 다문화사회의 변화를 정확히 관통한다.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주여성, 중도입국 청소년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면 그가 먼저 나섰다. 정호 스님이 말한 예비학교 개념의 중도입국 청소년 시설은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에서 다문화 예비학교를 설립해 현실이 됐다.
"불교계의 사회활동이 저조한 것이 늘 마음 아팠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곳마다 다닌 것이 이처럼 크게 되었네요. 우리 사회는 기득권 때문에 개혁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끊임없이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외국인 주민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앞으로 이 사회에 어떻게 드러날지 지켜봐야 합니다."노동력을 수입했는데 사람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