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리뷰
진천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이라 했다. 그래서 생거진천이다. 생거진천은 설화와 전설의 고장이기도 하다. 임꺽정의 전설이 구전으로 내려오고 용의 상서로운 기운을 품었다. 그리고 '상산팔경'이라는 아름다운 풍수를 가지고 있다. 생거진천이 품고 있는 신비 속으로 들어가 본다.-기자 말기획취재 상산8경을 찾아서 ① 임꺽정과 미르 숲
"속리산 천왕봉에서 뻗어온 산줄기가 북쪽으로 내달려. 한남금북정맥이야. 고것이 어디까지 가냐면 칠장사 뒤까지 가. 거기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갈려. 금북이 여기서부터 서산까지 가. 그것이 휘돌아 쳐서 분지를 이루는데 이게 진천이야. 지형을 보면 서남쪽에는 태풍이 오잖아. 그런데 금북정맥이 태풍을 막아줘. 겨울에는 찬바람이 서북쪽에서 내려와. 그것은 금북정맥이 막아. 그래서 풍수해가 없어. 여기 살면 풍수해가 없어."(변해종, 진천향토사연구회장)성호사설을 쓴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은 조선의 3대 도적으로 홍길동과 장길산, 그리고 임꺽정(林巨正)을 꼽았다. 괴산 출신인 벽초 홍명희의 소설로 더 유명하지만 임꺽정은 엄연한 실존인물이다. 명종실록은 임꺽정을 흉악한 도적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도적이 아니다. 명종실록을 기록한 사관조차도 임꺽정의 출현 배경을 부패한 권력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곤궁한 백성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고 적었다.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명희도 소설에서 그렇게 적었다. 임꺽정이 의적단을 꾸려 활동을 펼친 곳은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일대다. 이 지역에선 아직도 임꺽정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협곡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절경을 가진 한탄강이 흐르는 강원도 철원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고석정. 이곳에도 임꺽정의 전설이 흐른다. 이에 다르면 임꺽정은 고석정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함경도에서 상납되는 조공을 탈취해 서민에게 분배해줬다.
조정에서는 임꺽정을 생포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썼지만 그때마다 꺽지로 변신해 한탄강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때문에 훗날 사람들은 임거정을 '임꺽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둔갑술을 쓰는 의적 임꺽정. 이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진천에서 전해진다. 바로 임꺽정의 집터가 있던 곳이 진천이며 이곳에서도 둔갑술을 썼다는 것이다.
진천상산고적회가 펴낸 '진천의구비문학'(2004)에 따르면 진천에서 초평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덕문이 방죽'이 바로 임꺽정이 살던 집터다.
조선 명종 당시 어지미-질마곡-안성-한양으로 가는 세금이나 곡식이 중간에서 줄어들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조정은 임꺽정이 부하를 시켜 곡식을 약탈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관가에서 즉시 사람을 풀어 임꺽정을 잡으라 시키니 임꺽정은 강물 속으로 들어가 잉어로 둔갑했다.
몇 번의 둔갑술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마침내 잡히고 만다. 이후 덕문이 방죽은 임꺽정이 살던 집터이며 역적의 터이므로 없애야 한다고 해 물을 채워 방죽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방죽도 사라지고 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