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를 만들다가 백남기 농민을 떠올린다

쌀 가공품에 들어가는 쌀을 '우리 쌀'로 한다면

등록 2016.10.10 14:38수정 2016.10.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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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앉은 아이들 입에서 '오도독 오도독' 소리가 난다. 동영상을 보는 아이들 입은 오물오물 움직인다. 고소한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지금 누룽지를 먹고 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버스는 하루에 몇 번밖에 다니지 않았고 버스를 타려면 30분 정도는 걸어야 했다. 당시에는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는데 도시락 가방 안에는 엄마가 가마솥 바닥에서 긁어주신 누룽지가 늘 있었다. 밤 늦게 친구들과 걸어올 때면 엄마는 아랫동네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자녀를 마중 나오는 엄마는 우리 엄마가 유일했다. 직장을 다닐 때에도 엄마의 마중은 이어졌다.

요즘 나는 엄마가 내게 해주신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누룽지를 해 준다.

아침에 쌀 두 컵 정도 밥을 한다. 셋이 모여 앉아 아침을 먹고 또 저녁을 먹는다. 두 컵이면 충분한데 가끔 밥이 남을 때가 있다. 조금씩 남은 밥을 한 그릇에 모아 냉동을 해 놓는다. 그렇게 어느 정도 모은 밥으로 누룽지를 만든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만든 누룽지를 정말 잘 먹는다. 내가 만든 누룽지는 딱딱하지 않고 바삭하고 고소하다. 달지 않아서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누룽지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슬로우푸드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누룽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시간이 더 걸리는 만큼 더 바삭하고 고소한 누룽지가 만들어진다.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약간 두꺼운 팬을 준비한다. 코팅이 된 팬은 별로 좋지 않다.

자꾸 자꾸 손이 가는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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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팬과 약한 불 누룽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슬로우푸드이다. 그래서 두꺼운 팬이 좋다. ⓒ 김은숙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두꺼운 것이 좋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방법은 누룽지를 만들 때 밥만 넣지 않고 물을 같이 넣어서 끓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물이 다 없어지면 물을 다시 넣고 밥알을 으깨고 물이 또 졸아들면 다시 물을 넣고 또 밥알을 으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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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알 으깨기 밥알을 으깬다. 감자 으깨는 도구로 열심히 으깬다. ⓒ 김은숙


이렇게 밥알을 다 으깬 뒤에 물을 조금 더 넣는다. 그리고 불을 아주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누룽지가 저절로 일어날 때까지 익힌다. 누룽지가 다 되면 고소한 냄새가 나고 팬에서 누룽지가 저절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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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누룽지는 슬로 푸드이다. ⓒ 김은숙


이렇게 만든 누룽지를 통에 담아 놓으면 아이들이 알아서 꺼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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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일어나는 누룽지 누룽지가 되면 저절로 일어난다. 고소한 누룽지가 다 되었다. ⓒ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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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누룽지 이렇게 통에 담아 놓으면 아이들이 먹는다 ⓒ 김은숙


우리집은 누룽지를 자주 해 먹는다. 가끔은 아파트 경비 아저씨께 간식 삼아 드시라고 갖다 드린다. 누룽지는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쌀 소비량이 식구 수에 비해 많은 편이다.

올해도 풍작이라고 한다. 게다가 쌀 소비는 줄어서 쌀 수매 값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하지만 과연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일까?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풍작과 소비량 감소만이 쌀 수매값 하락의 타당성을 가져다 줄까?

풍작과 소비량으로 의제를 설정한 뒤 그 프레임에 맞춰 관련 기사를 계속 내보내면서 쌀 수매가 하락의 타당성과 절대 농지 해제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받으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절대 농지 해제 후에 누가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되는지에 관심을 갖고 볼 일이다.

식량은 다른 어떤 공산품보다 중요하지만 그 가치는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물과 공기가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평소에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식량은 언제든 무기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입에만 의존한다면 절대 안 된다. 어쩌면 수입 쌀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에 자국 생산량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더 자랐을 때 쌀이 '무기'처럼 사용되질 않길 바란다.

그냥 밥을 더 먹는 것에 머무르지 말자

고 백남기 선생님은 바로 이 쌀값 안정화를 위해,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을 지키라고 하다가 명을 달리 하셨다. 남편은 늘 농업이 미래라고 말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휴대전화가 아무리 좋아도 먹을 것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테니까.

더구나 벼가 자라는 논은 식량을 만드는 곳이면서 환경적인 가치가 크다. 지구의 온도를 낮춰주며, 물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홍수 조절 능력도 있다.

식량이 무기로 쓰이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의 쌀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단지 밥을 더 먹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강구했으면 좋겠다. 간식으로 과자도 좋지만 집에서 직접 만든 누룽지는 어떨까? 또한 쌀과자나 막걸리와 같은 쌀 가공품에 들어가는 쌀을 수입쌀이 아닌 '그들의 말로' 남아도는 우리 쌀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마이더스 이야기를 기억하자. 만지는 것은 모두 금이 되게 해달라고 했던 마이더스가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자 자기 손이 가진 능력을 저주하며 그 능력을 없애 달라고 애원했다는 사실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투게더광산톡에도 실렸습니다.
#쌀 #누룽지 #간식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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