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주인공이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

[서평]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등록 2016.10.17 14:44수정 2016.10.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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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책표지. ⓒ 창비

'김영란법'으로 최근 그 이름이 더 유명해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법관이었던 김영란은 실은 대단한 책벌레라고 한다. <책 읽기의 쓸모>(창비 펴냄)는 그가 말하는 책읽기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법조인으로 살아온 그는 오랜 세월 대가족으로 살아오며 차분하게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방을 비롯한 집안 곳곳에 책을 두고 짬짬이 읽는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짐을 꾸리기에 앞서 '어떤 책을 가지고 가 읽을까?'를 고민, 여행 중 읽을 책을 신중하게 준비할 정도로 책읽기에 빠져 살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를 '활자중독증'이라고 말하는 그가 주로 읽는 책들은 문학작품들이 대부분. 더러는 '잊으려고 책을 읽나?' 할 정도로 글자만 읽기도 하고, 시나 소설을 판결에 인용할 수 없는 만큼 직업적으로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시간에 쫓기며 읽는 자신의 책읽기에 스스로 '내가 왜 이처럼 쓸모없는 책읽기에 몰두 하는가?' 물을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그와 같은 책읽기가 "쓸모 있었다. 직업적으로도 꽤 쓸모 있었다"고 말한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책을 읽으면 다 잊어버리거나 없었던 일이 되기도 여러 번, 즉 위로를 받았으며, 법률 관련 책을 쓰는데 인용하거나 참고하는 등 많이 써먹었기 때문"이란다.

모두 똑같아 보이는 집들이지만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정념에 관한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판결이라고 하면 흔히 보편적 정의, 보편적 기준을 대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똑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해도 모두 각자의 개별적인 사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가령 누가 사람을 죽였다고 할 때, 같은 살인이라 해도 그 배경을 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아버지를 죽인 아들도 있을 수 있고,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마구 때리고 몇 날 며칠을 방치해두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부모도 있지요. 그렇게 개별적인 이야기가 다 다릅니다. 재판관은 그런 개별성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무엇보다 "재판관이 가져야 할 공적 합리성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공평한 관찰자의 감정을 갖는데, 겉에 드러난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객관적, 구체적으로 보게 하는 동시에 개개인의 사정을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헤아리는데, 비판적인 거리를 두면서도 그 사람의 감정과 처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 "직업으로서 꽤 쓸모 있는 책읽기였다"는 것이다.  


법조인으로 외길을 걸어온 김영란 전 대법관, '소수자의 대법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살아온 김영란법의 주인공은 어떤 책들을 읽어왔으며, 그가 읽은 어떤 책들이 법조인의 삶에 영향을 끼쳤을까.

저자는 어린 시절, 책과 공부에 빠지게 한 특별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간 읽은 수많은 책 중 특별한 책 몇 권의 인상 깊은 부분들을 소개한다. 그러며 책읽기의 필요성과 중요성, 법조인으로서의 책읽기, 책을 통해 세상 보기, 제대로 읽기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학의 세계는 보편성을 쫒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입니다. (…)보편에만 매몰되어 구체적인 세계를 보지 못한다면 훌륭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누스바움(기자 주: <시적 정의>(2013. 궁리) 저자)의 논지입니다. 그는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비용 편익 분석과 같은 방식이 공적인 정책 결정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공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문학작품을 점점 더 읽지 않게 된 데 우려를 표합니다. (…)사회의 '몫 없는 자들'과 억압받는 집단에 공감하며 그들과 동일시하는 문학적 경험을 통해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그 의미를 재성찰함으로써 공적 합리성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것을 소설가적 방식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법관이 바라보는 세계가 법칙에 발을 디딘 세계라면, 독서가로서 바라보는 세계는 다양성이 풍성하게 펼쳐져 있는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세계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가 재판에 임하는 법관의 중요한 고민이 되는 것이고요.


책은 저자가 특별하게 읽어온 책을 소개하며 이야기하는 것과(1부), 묻고 답하기(2부)로 되어 있다. '법관으로서 바라보는 세계와 독서가로서 바라보는 세계는 어떻게 다른가?' 질문에 그는 이처럼 답한다.

▲자녀를 자연스럽게 책으로 이끌 방법은 없을까?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신념은 어떻게 갖게 되었는가? ▲법의 세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책을 많이 읽기 위한 비법은 따로 있을까? ▲세상에 있는 수많은 책 중 '영혼을 뒤흔드는 책', 또는 자신에게 맞는 책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동안의 책 읽기를 돌아보며, 그리고 공감하며.

''나'와 세상'에 대해 묻고, 고민하고 진짜 공부를 해야 할 때다.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온 우리 시대의 지성들에게, 우리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한 공부법을 묻다'의 취지로 발간되고 있는 '공부의 시대' 시리즈 한 권이다.

2016년 10월 현재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공부>,<유시민의 공감필법>,<정혜신의 사람공부>,<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그리고 이 책<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이렇게 5권이 출간됐다.
덧붙이는 글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김영란) | 창비 | 2016-07-15 l 정가 7,000원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김영란 지음,
창비, 2016


#김영란법 #공부의 시대 #김영란 대법관 #소수인들의 대법관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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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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