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1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이날 오전 부산 감만부두 앞에서 화물연대 조합원 2천 여명이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정민규
정부가 초강경으로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하고 있다. 경찰은 일주일 간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본부장을 비롯해 조합원 70여명을 연행했고, 국토부는 대화보다는 화물연대 요구를 깎아내리는 언론플레이만 하고 있다.
하지만 화물연대의 이번 파업은 2003년 이후 파업 중 가장 온건하고, 요구 또한 지금까지 파업 요구 중 가장 소박한 것들이다(19일 오전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 파업 철회 결정은 오후 총회에서 논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 편집자 말).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오직 공권력으로만 대하는 것을 보면 불통 정권의 막장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물론 육상 화물운송 산업이 소비재 산업이 아니다보니 화물연대 요구에 대해 관련 종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가 어렵고, 정부 정책에 대해 화물 노동자들이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반대를 이유에 대해서도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이해하는 만큼 경제민주화의 방향도 보인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육상 화물운송 산업은 한국 재벌 경제의 모순이 가장 추악한 형태로 응축된 곳으로 경제 민주화 개혁의 가늠자로 삼아야 할 표본이다.
'이중적'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이뤄진 육상 화물운송 시장첫째, 우리나라의 육상 화물운송 시장은 세계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중적' 다단계 하청 구조로, 화물연대의 요구들은 이를 개혁해 달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화물차는 이른바 지입차로 현대글로비스, CJ대한통운 같은 운송회사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화물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소유한 것이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가 부품이나 완성차를 운반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에게 화물을 맡기면, 현대글로비스가 규모가 작은 ○○운송업체들에게 운반을 아웃소싱하고, 이 소규모 운송업체들이 또 △△알선업체들을 통해 화물차를 수배하는 식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화물차를 소유한 화물노동자가 부품과 완성차를 운송한다.
화주(현대자동차)-운송사(현대글로비스)-하청운송사(○○운송업체)-알선업체-화물차로 이어지는 짧게는 2단계, 길게는 5단계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최초 화주가 지불한 운송비는 작게는 20%, 많게는 30~40%까지 중간에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진다.
물량을 떠넘기는 다단계 하도급이야 건설업이나 제조업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육상 화물운송 시장이 황당한 것은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화물차 번호판까지도 다단계 하청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물 노동자가 화물차를 소유하지만 이상하게도 운송업을 할 수 있는 노란색 번호판은 대부분 운송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탓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운송업체가 정부로 부터 50개의 번호판을 허가받아 소유했는데, 자신이 직접 계약할 화물차 20대를 제외하면 30개의 번호판이 남아, 이를 B운송업체에 돈을 받고 임대한다. 그리고 B운송업체는 이 30개의 번호판을 중간 번호판 매매 업자에게 임대하고, 또 중간 번호판 매매 업자가 화물 노동자에게 번호판을 다시 임대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다단계로 번호판이 임대 또는 매매되며, 결국 화물노동자는 운송을 위해 이 번호판을 수천만 원을 주고 임대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화물차의 노란색 번호판은 상당수가 여러 방식으로 매매된 번호판들이다.
요약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물량도 다단계, 운송허가증(영업용번호판)도 다단계로 매매되며, 이 모든 비용을 시장의 바닥에 있는 화물 노동자가 책임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화물에 손끝하나 대지 않는 중간업자들이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간다. 화물차를 화물기사가 스스로 구매해야 하는 지입제도도 세계적으로 흔치 않지만, 아예 운송허가증도 이렇게 다단계로 매매되는 시장은 세계에서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모든 다단계의 꼭대기에는 당연하게도 현대글로비스, CJ대한통운 같은 재벌 운송사들이 자리한다.
화물연대가 내세운 파업 요구들은 지입제를 폐지하라는 것이고, 지입제를 당장 폐지할 수 없으면 다단계 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들을 시행하라는 것이다.
화물연대가 10년 넘게 요구하고 있는 표준운임제는 실제 화물을 운송하는 화물노동자의 수입을 기준으로 화물운임체계를 법적으로 정하라는 것이고(근로기준법의 최저임금제와 같이), 운송사가 일방적으로 화물차노동자에게서 번호판을 빼앗지 못하도록 제도적 보호를 강화해달라는 것이며(임대차보호법과 같이), 다단계 중간 수수료 제도를 유지한 체 화물노동자 간 경쟁만 과열시키는 수급조절규제 완화 정책을 폐지하라(점포의 입점 거리 제한 제도 같이)는 것이다.
화물차 과적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