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jtbc
폭로와 가쉽의 프레임 속에서 그도 그럴 것이 최순실의 가장 최측근이라 하여 각종 실권을 행사했던 고영태의 전직도 의심받고 있다. 그와 최순실, 그리고 '황태자'라는 전근대적 별칭으로 불리는 차순택이라는 인물이 만나게 된 과정은 너무도 '사적'으로 보인다. 화수분처럼 파도파도 폭로할 소재가 넘치니 말이다.
JTBC는 독일로 달려가 최순실의 행적을 쫓는다. 특종을 뒤따라가는 종편 등의 보도 프로그램은 그런 빼앗긴 특종 대신 가장 손쉬운 '신상 털기'식의 가쉽성 보도로 앞다투어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이 사안에 관해 그간 입을 꾹 다물었던 KBS도 정유라와 관련된 사안들을 보도하기 시작했으며 종편들은 고영태와 관련된 과거 사실과 그에 관련된 연예인들을 입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고영태의 과거 사진 속 연예인의 실명을 들먹이고, 고영태가 관여한 연예인 야구단에 함께한 연예인들을 손가락질 한다. 또한 다른 실세로 등장하는 최순실 언니의 딸 장시호(장유진)와 과거 친분이 있다는 연예인들의 이니셜로 퍼즐 게임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뒤에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을 비롯한 그 측근들에 대한 이렇게 흘러넘치는 가쉽성 기사는 국민들을 '수치'스럽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은 쉽게 그들을 '조롱'하게 된다. '무당'이나, '호빠'라는 단어로 폄하하며 비웃는 것으로 '분노'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그런 사람들에게 당한 대통령이 불쌍하다'는 식의 동정론이 나오기도 한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당한 '정신 나간 사람' 수준으로 사건의 프레임이 변화된다. '조롱'은 쉽지만, '분노'에는 '실천'이 따른다.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또 다른 가쉽이 없나 찾아 헤매는 사이 분노의 열기는 어느새 연예인 가쉽 뒤지던 그 습관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난 여름, 우병우 의혹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사건이 무엇이었는지를. 최신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들보다 미디어 영향력이 컸던 연예인은 술집 여성의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한 남성 연예인이었다. 검찰 수사도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연예인과 달리, 검찰 조사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여러 언론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던 성폭행 당사자라는 여성과 그의 친척이라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쏟아부었던 것이 언론이었다. 바로 지금 최순실과 그 측근들의 가쉽을 '정의로운' 양 쏟아내고 있는 언론들 말이다.
아니 좀 더 앞서 기억해야 사실도 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비롯하여, 해경의 수상한 행동 그리고 사건을 덮고 무마하려는 시도 대신, 엉뚱하게도 유병언으로 시선을 돌리던 흐름. 유병언의 이상한 종교와 행태, 그리고 그의 추적으로 시선을 돌렸던 것도 바로 지금의 최순실과 그 측근들의 '사실'들을 쏟아부었던 언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