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어버이연합 회원 등이 민족문제연구소 입구에서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민족문제연구소
- 친일문제연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저항과 반발이 컸을 것 같습니다. "친일문제연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인데 협박과 하소연 그리고 무시입니다. 가장 반발이 컸던 사안은 박정희기념관 저지와 군사쿠데타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문래공원에 세워진 박정희 흉상을 철거할 때였습니다. 박정희 지지자인 노인들이 민문연에 몰려와 계란을 투척하고, 빨갱이라고 욕설하고, '밤길 조심하라'는 등의 협박전화를 했습니다. 협박전화에 시달리던 여성 상근자들은 울기도 했습니다."
- 한국 사회에서 민문연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요."세계적으로 민문연과 같은 민간연구소는 없습니다. 인권단체는 많지만 시민의 힘으로 운영되는 민간연구소는 민문연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친일파가 득세하는 한국 사회에서 민문연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배경은 회원들의 헌신적인 활동과 국민들의 응원 그리고, 그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연구의 힘입니다."
- 민문연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연구비 부족과 인력부족을 헌신과 희생으로 메우고 있습니다. 연구원들의 가장 큰 소원은 연구에 집중하는 것인데 닥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권이 국정교과서 등의 사고(?)를 치면 기존의 연구를 중단하고 현안에 대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들의 대우도 열악합니다. 10년~20년 된 실장급(박사급 연구원)들의 경우 박봉(200만원가량)도 박봉이지만 자녀 교육비와 주택 등의 생활고에 대한 압박이 심한 편이죠."
- 어려움을 버티게 하는 힘은 무엇입니까."지난 25년 동안 민문연은 잡음이 없었습니다. 이돈명(1대), 조문기(2대), 김병상(3대), 함세웅(4대) 이사장을 비롯해 올곧은 어른들을 모신 것은 큰 복입니다. 김봉우(1대), 한상범(2대) 임헌영(3대) 소장 등의 강직한 선배 어른들이 연구소를 지켰는데 임 소장은 상근비를 전혀 받지 않고 헌신하십니다. 어른들은 상근자들을 격려하고 상근자들은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해내는 전통이 형성됐습니다."
- 민문연이 추진하는 핵심사업은 무엇입니까."민문연의 핵심 사업 세 가지를 꼽는다면 첫째 교육 사업을 통해 '친일문제'를 좀 더 쉽게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고 둘째는 친일 관련 자료를 비롯해서 근현대 민중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과거청산운동의 허브 역할을 목표로 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셋째는 남북 공동의 강제동원 진상규명 사업 등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입니다. 저희가 소장하고 있는 4만여 점에 가까운 식민지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과 친일인명사전의 계속적인 개정 증보작, 징용, 징병, 야스쿠니 문제와 각종 한일 간 역사 관련 소송 자료 등 방대한 자료들을 전시할 박물관이 절실하게 필요한데 기금이 부족합니다."
작가회의 미당문학상 반대의지 어디로 갔나… 이사장마저 심사위원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