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농촌에 '손과 돈'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

[불행사회 한국-도시] 도시는 '마을'도, '공동체'도 될 수 없다

등록 2016.11.02 11:26수정 2016.11.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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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이른바 선진유럽의 도시에 사는 시민들은 행복하다. 수백년 넘은 중세의 고건축물이 즐비한 거리, 도시를 아늑하게 둘러싼 울창한 숲, 느릿느릿 도심을 걸어다니는듯한 전차(tram), 누구나, 언제나 쉬어갈 수 있는 도시의 광장과 공원, 등하교하는 학생들의 자전거 물결, 그리고 무엇보다 큰 도시라고 해도 수십만명 밖에 안 되는 적정한 거주인구.

특히 독일의 경우, 농민은 2% 밖에 안 되지만 60%의 국민들이 농촌에 산다. 농촌은 농사를 짓는 농장같은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기에 좋은 마을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가 농민들이 농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소득의 80%가까이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문화경관직불금'은 오로지 농민과 농촌을 걱정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농민들이 농촌에서 못 살아 도시로 몰려든다면 골치가 아프기 때문에 농촌에 붙잡아 두려는 이유도 적지 않다. 고용, 주거, 교육, 환경 등 온갖 도시문제를 초래하는 과밀 또는 과잉인구가 결국 도시문제 만사의 병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도시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산다. 우리 국민 10명 중 9명은 도시지역에 살고 있다. 정확하게 인구의 91.66%인 4705만여 명이 도시민이다. 도시지역은 국토면적의 16%에 불과하다. 실제 도시민이 거주하는 주거지역은 2.4% 밖에 안 된다. 그 2.4%의 좁은 땅덩어리에 91.66%의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통계이니 사실일 것이다.

반명에 농촌에는 사람이 너무 없다.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채 1명도 농촌에 살지 않는다. 먹고살려고 다 도시로 몰려가 '도시의 난민' 신세로 전락해서 그렇다. 농사를 짓는 농가 인구는 5%도 되지 않는다. 농민 5명이 농사를 지어서 95명의 도시민을 먹여살리는 꼴이다. 게다가 농부 10명 중 7명은 환갑 넘은 늙은 농부다. 10개 농가 중 6개 농가는 연 소득 1천만원, 농지면적 1ha도 안 된다. 역시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이니 틀린 정보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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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부르크 중세의 거리가 살아있는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중심부를 ‘느릿느릿 걸어다디는’ 전차(tram) ⓒ 정기석


마을이란 '주로 시골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마을이란 본디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한데 모여 사는 곳'을 뜻한다. 도시에서는 마을 보다 동네라고 부르는 게 더 타당하다. 농촌의 마을은 생활과 생업이 거의 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마을공동체의 원형은 농촌에 있다. 도시의 동네에서는 생활과 생업이 멀리 떨어지거나 흩어져 있다. 생업이라는 지상과제 때문에 생활은 적당히 양보되고 희생된다. 집 보다 직장에서 소진하는 일생이 더 많다. 일상의 삶에 저녁이란 없고 사람 조차 생업 다음 순서로 밀리기 일쑤다. 삶과 일이 서로 만날 틈이나 겨를이 별로 없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도시의 '동네(quartier)'를 '기계적 연대와 배제의 공간'으로 규정했다. 도시의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서로 보살피고 챙겨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동체이기는 커녕 어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비정한 생활공간이라고 탄식했다. 그래서 '사회적분업'을 통해 '유기적 연대'를 하자고 호소한다. 하지만 이미 자체가 물질화, 자본화, 비대화된 도시라는 구조악 아래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도시의 동네를 과연 삶과 일이 하나되는 마을이나 공동체로 전환할 수 있을까. 도시의 행정, 전문가, 주민들이 협동하고 연대하면 동네는 마침내 마을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마을공동체 사업이나 운동의 기대효과란 기껏 당의정 진통제나 신경안정제 수준이 아닐까. 고단하고 외로운 도시생활을 일시적, 일회적이나마 위로하고 치유하는. 그래도 도시에 사는 동안 아무 것도 안 하느니 뭐라도 하는 게 나은 걸까.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했던 마하트마 간디가 생각하는 마을도 도시에 있지 않다. 마을의 물질과 영혼을 다 빼앗은 게 바로 도시라고 지적했다. 가해자 도시는 피해자 마을에 적절한 보상을 해야한다고 고발했다. 그렇게 오늘날의 도시는 사람과 자원, 기회와 희망을 독과점하고 있다. 원래 다 농촌마을에 있던 것이었다. 어서 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마땅히 농촌에 보상해야 한다. 먼저 너무 좁은 도시에 너무 많이 몰려들어 사는 도시난민들부터 제 고향으로, 정처로 돌아가야 한다. 자발적으로 하방해 마을의 시민으로 전향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너무 많이 살아서 생기는 도시의 문제, 사람이 너무 적게 살아서 생기는 농촌의 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다. 그러자면 이제 도시의 마을공동체 정책도 '모든 시민 끌어 안기'의 강박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차라리 '도시 난민의 자발적 하방'을 돕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 간디는 인도가 몇 안 되는 도시에서가 아니라 70만 마을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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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렌베르크 중세의 고도 뉘렌베르크(독일) 도심 광장의 아침에 열리는 농민시장 ⓒ 정기석


도시에서 먼저 농촌에 '손과 돈'을 내밀어야

지금 농촌에는 사람도, 돈도 없다.  5% 밖에 안 되는 농민이 95%의 도시민을, 국민을 먹여살리는 기형적인 구조다. 농촌의 중요성, 농가의 존재감, 그리고 농민의 자존감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인구수로나, 산업규모로나 고작 3~5% 남짓이다. 나머지 95%가 넘는 돈, 에너지, 기회, 그리고 희망은 모두 도시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도시와 농촌이, 그 지자체끼리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이때 사람도 돈도 없는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먼저 '손과 돈'을 내밀어야 한다. 다행히 최근 서울시는 500억원의 기금을 별도로 마련해 18개 광역 및 기초 지자체와 상생협력사업을 벌이고 있다. 오는 2018년까지 지역특산물을 살 수 있는 '상설직거래시장'을 2배 늘리고, 지역관광명소 2000개를 함께 발굴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 상생협력사업에는 광주·충남·전남 등 3개 광역자치단체, 거창군·고령군·고창군·금산군·남해군·수원시·순천시·영월군·완도군·완주군·정읍시·진안군·철원군·포천시·함평군 등 15개 기초자치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역격차로 인한 우리사회의 병은 '서울과 지방',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촌'의 상생으로 치유할 수 있다"며 상생협력사업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로써 서울시는 오는 2018년까지 지역농민과 도시민이 만날 수 있는 상설직거래시장을 현재 15개소에서 30개소까지 늘린다. 특히 거주 공간에 여유가 있는 어르신과 주거공간이 필요한 대학생을 연결 하는 등 도시 유휴 주거공간을 공유, 시세의 50%이하로 공급해 지역학생들의 주거비 걱정을 덜어주기로 했다.

또 18개 지자체들과 손을 잡고 현재 67개인 지역관광명소를 2000개소까지 발굴하고 확대한다. 20개 이상의 폐교는 리모델링해 숙박형 자연캠핑장과 자연체험공간 등으로 조성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도농상생지원센터도 설치해 상생교류사업을 지원하고, 일반예산 및 대외협력기금 총 500억 원을 마련해 투자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전라남도는 서울시의 상생 협력사업으로 귀농 희망자들이 사전 체험을 할 수 있는 '서울농장'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가 19억 9천만 원의 예산을 확정, 함평읍 석성리 소재 구 석성초등학교 폐교를 리모델링해 조성된다. 부지와 농지 2만5855㎡, 건물 962㎡ 규모의 서울농장에는 귀농희망자 15세대가 함께 머물며 사전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주거시설도 갖춘다. 또 서울시민 1500명이 주말, 주중 등을 이용해 농촌체험을 하는 교육시설, 영농실습시설, 농촌체험시설 등도 들어선다.

서울 성북구는 전남 나주, 담양, 신안, 영광, 충남 예산 등의 지역농협과 친환경 쌀 공급업체와 협약을 체결, 각 지자체를 대표하는 우수한 친환경 쌀을 연간 1000톤 이상 공급받기로 했다. 아울러 나주시, 담양군, 신안군, 영광군, 예산군 등 5개 자치단체장과 도시-농촌 간 지속가능한 교류와 상생발전을 위한 상호 협력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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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스루에 중세의 고도 칼스루에(독일)의 공유지에 조성된 시민들의 치유정원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 ⓒ 정기석


먼저 '도시농업'으로 농촌과 마을을 배우자

생업 중심의 공간인 도시는 마을이나 공동체를 하기에 다소 부적절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생활공동체를 하려는 노력과 운동이 농촌보다 오히려 도시에서 더 절실하게 벌어지고 있다. '마을에서 살고 싶은 소망과 그리움이 더 커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도시텃밭 등 도시농업 운동이 도시에서  확산되는 이유로 생각한다.

도시농업은 도시라는 차가운 공간을 인간적인 따뜻한 공간으로 치유한다. 도시농업에 참여하면서 지식과 노동을 나누는 이웃들은 나눔공동체의 정서와 가치를 공유한다. 농민은 도시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도시민은 농민의 생활을 책임지는 도농상생의 전초기지가 바로 도시텃밭, 도시농업이다. 

정부도 도시농업 활성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12년 5월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지자체마다 조례를 제정해 속속 참여하고 있다. 도시농업을 통해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을 제고하겠다는 정책 목표다. 도시민들의 농사체험이 주는 정서함양, 건강증진, 공동체회복 등 순기능에 주목한 것이다. 도시농업 참여자수도 급증 추세다. 2010년 15만명 수준에서 2014년 108만명을 넘어 4년 사이 7배나 증가했다. 도시텃밭 면적도 2014년 668ha로 같은 기간 동안 6.4배나 증가했다.

도시농업의 진정한 가치와 효용은, 단지 도시나 도시민만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농촌과 도시의 상생 발전'을 매개하고 촉발하는 데 있다. 농촌이 주곡개념에서 식량기지라면, 도시는 부식거리를 생산하는 식량 자급기지가 돼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도시농업의 궁극적인 목적과 가치는 다름 아닌 '도농상생', '국민농업'의 해법이 될 수 있다.

도시농업을 경험한 도시민들은 국내산 농산물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이 깊어져 농민들이 생산하는 좋은 농산물과 먹거리의 구매력이 증폭될 것이다. 따라서 도시농업과 농촌농업의 상생을 촉발할 수 있다. 도시민들은 텃밭농원 등 도시농업 체험활동을 통해 도시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도시공동체 활동은 자연스레 농촌공동체와 교류와 직거래로 이어져 도농상생 네트워크의 넓이와 폭이 확대, 확산하게 된다. 마을이 될 수 없는 도시도, 마을이 그리운 도시민들도 마을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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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천만 시민들이 ‘난민처럼’ 모여사는 거대도시 서울시의 혁신과 출구를 모색하는 실험장 '서울혁신파크' ⓒ 정기석


덧붙이는 글 ※ 불행사회, 한국 : 한국인은 불행하다. 한국인은 태어나고 자라고 먹고사는 조국에서 사는 게 불안하고 불쾌하다. 위험하다. 주관적인 기분이나 감정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처해있는 현실이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자살률은 부동의 1위다.
한국인은 서로 믿지 않는다. 협동하거나 공유하지 않는다. 사회적, 정치적 연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가 자꾸 편을 가른다. 남과 북, 경상도와 전라도, 강남과 강북이 자꾸 금을 긋고 벽을 쌓는다. 사용자와 노동자, 선생과 학생, 갑과 을이 서로 반목하고 질시한다. 그래야 겨우 나 혼자라도 먹고살 수 있다.
그렇게 살다보니 한국인은 힘들 때 의지할 친구나 동료 하나 없다. 국가와 정부의 책임과 의무는 개인과 가계가 온통 짊어지고 있다. 대의정치와 민주주의는 조롱당하고 능멸당하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불법과 반칙이 얼마든지 승소한다. 조폭도 언론과 방송을 소유하고 활용한다. 전문가와 현자는 없고 사이비와 양아치만 난무한다. 친일파와 독재자의 후손이 되려 도덕과 정의를 정의하고 노래한다. 거짓말과 모함도 우기면 진실로 인정된다.
한국 사회에서 정신은 잿빛으로 타락하고 물질만 금빛 찬란하다. 공공성과 공동체는 소멸하고 이기주의와 패거리만 득세한다. 무기력증과 모멸감과 복수심이 일상을 지배한다. 신자유주의 천민자본주의의 완전무결한 표본이다. 불량한 한국은‘불행사회’다. 참‘나쁜 나라’다. 한국, 한국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않다. 공멸 직전이다.
#불행사회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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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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