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 뒤덮인 광화문... "박근혜 하야하라"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이런 현상이 어떤 이들에겐 반갑지만은 않다고 한다. 며칠 전 저녁약속 때문에 시내에 나가는 길에 이용했던 택시 기사 아저씨는 JTBC 때문에 손님이 너무 없다고 괴로워했다.
"이 시간대면 술자리 2차, 3차 몰려다닐 시간인데 거리가 한산하잖아요. 여덟시만 되면 거리에 사람이 안 다녀요."그러는 택시 기사님도 먹고 사는 문제만 아니라면 그 시간에 집에서 JTBC 뉴스를 시청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사님은 뉴스를 제때 못 봐 답답하다, 오늘은 새로운 소식이 없었는지 물으셨다. 나라가 이 모양인데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토로하셨다.
"이제라도 그것들 정체를 알았으니 끝장내야죠. 대통령이 지 발로 걸어 나올 리는 없고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쫓아내야죠. 근데, 검찰 하는 짓거리들 보세요. 저는, 거 굴착기 몰고 대검찰청 쳐들어가버린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전라북도 순창인가, 익산인가? 거기서부터 중장비를 싣고 갔다잖아요. 얼마나 천불나면 그랬겠어요. 내가 다 속이 시원합디다. 근디, 손님은 이런 제 생각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하시오?""아니에요. 저도 그 기사 분 심정 이해하죠. 근데, 배상금이 너무 많이 나와 걱정되네요. 사람을 다치게 한 것도 안타깝고요.""아! 맞네요. 사람이 다치면 안 되는데. 나중 생각해서 요령껏 박았어야 하는데. 하긴 거기까지 굴착기 몰고 간 사람이 그런 것 생각했겠소? 견적이 수월찮이 나왔을 텐데. 얼마나 물어줘야 한답디까요?""뉴스에 보니까. 1억 5천인가? 그렇다던데요.""워메. 어쩔까. 그렇게나 많이? 그 돈을 어떻게 다 물어낸다요?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도와준다거나 그런 말은 없던가요?"예전 같으면 택시 기사가 승객을 상대로 공공연히 폭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들끓는 전 국민적 공분 탓인지, 이런 대화를 어디서나 서슴지 않고 한다.
부역했던 이들 퇴치할 때까지 '퇴진' 주문 계속될 것지난 주말, 친구들 모임이 있어 서울에 갔을 때 나는 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평범한 친구들이 불과 얼마 만에 굉장히 정치적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남녀 혼성 20여 명의 친구들이 모였는데 내가 오래 알아오던 친구들 모습이 아니었다. 남자 친구들은 그렇다 쳐도 평소 국무총리 이름조차 모르고 살만큼 정치에 무관심 했던 여자 친구들조차 지금은 자식걱정, 살림걱정과 같은 비중으로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의 모습은 내 신선한 충격이었고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오래 전부터 계획된 일정이 있어 그날(5일) 저녁 광화문 광장 집회에 합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우리 모임은 현 시국을 개탄하고 처벌받을 사람들을 성토하고 장차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느라 심각했고, 결국 정치토론장으로 변했다. 남녀 구분이 없이 친구들은 모두 각자 품은 생각을 옆 사람과 나누느라 바빴다. 그것은 그리고 여태 느끼지 못한 벅찬 감정이었다. 사태가 본격적으로 폭로되고 불과 보름여가 경과됐을 뿐인데 평범했던 친구들이 모두 뚜렷한 정치적 견해와 사명감을 지닌 투사가 되어 있었다.
스무 명에 가까운 인원이 각자 자신들이 그동안 혼자 느끼고 분노하고 생각했던 바를 마구 쏟아냈다. 그때마다 나도 친구들도 혼자만의 생각이 공통의 의견으로 공인받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더니 분노와 울분은 공유하다보니 몇 갑절로 더욱 거세지는 느낌이었다. 혼자 느꼈던 분노를 친구들과 나누다 보니 더 울분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근래 들어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타인과 공유해본 게 얼마만인가 새삼 깨달았다. 혼자 집에서 뉴스를 검색하고 SNS를 눈팅하면서 직접 대화를 나눈 사람은 기껏해야 가족뿐이었다. 오프라인 상태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생각과 의견을 교환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번 친구들 모임은 답답한 시국에 의미 있고 숨통이 트이는 자리였다. 각자 느끼는 분노와 박탈감을 토로하면서도 혼자 곱씹던 자괴감과 무기력이 많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야! 우리 중에 누구 50억 있는 사람 있을까나? 장시호가 제주도 200억짜리 매물을 급매로 50억에 내놨단다.""강남일대에 최씨 일가 부동산이 헐값에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대. 있는 놈들은 이런 기회에 떼돈 버는 거잖아. 아이고 배야!""그것들 재산 싹 몰수해서 국고로 환수해야 하는데.""검찰을 어떻게 믿어? 국민들이 얼마나 우스우면 피의자를 체포도 안 하고 증거 인멸할 시간주고 유유히 은행에서 현금까지 찾게 하냐? 우병우란 놈 팔짱끼고 검사들 앞에 서 있는 폼 봐라. 국민들이 같잖다는 표정이잖아.""그때까지 최순실이 계좌를 동결시키지 않았다는데 빡 쳤다.""오늘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잡아놓은 일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다음 주는 각자 기대해보자. 아까 오는 길에 우리 몇 명은 잠깐 광화문 들렀다 왔는데 열기가 어마어마하더라. 시민들이 옛날과 확실히 달라졌어. 야! 감동 그 자체였어."친구들은 일부러 약속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 확신했다. 평범한 시민들이었던 내 친구들이 아마 12일엔 각자 사는 도시의 가장 번화한 광장으로 달려나갈 것이라는 것을. 그날 보았던 내 친구들의 울분과 각오로 짐작건대 그들이 이미 투쟁대열의 투사가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2일 가장 치열한 시간대에 우리가 공유하는 사이트에는 각각 서울, 광주, 제주에서 올린 친구들의 군중 속 인증샷이 쇄도할 것 같은 예감이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하야'와 '퇴진' 두 글자이다. 그들에게 부역했던 이들을 깡그리 퇴치할 때까지 '퇴진' '하야' 주문은 외치는 민중들의 함성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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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엄마가 좋아요", 최순실덕에 고백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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