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 운전면허 적성검사 왜 받나

신체검사는 형식적, 자가진단표로 3분이면 '뚝딱'

등록 2016.11.15 11:46수정 2016.11.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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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전자의 정신•신체적 질병에 따라 10년마다 갱신하게 돼있는 ‘운전면허 적성검사’가 형식적인 절차에 그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 운전자의 정신•신체적 질병에 따라 10년마다 갱신하게 돼있는 ‘운전면허 적성검사’가 형식적인 절차에 그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충청리뷰

운전자의 정신·신체적 질병에 따라 10년마다 갱신하게 돼있는 '운전면허 적성검사'가 형식에 그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9월 감사원에 따르면 운전면허를 보유할 수 없는 후천성 시각장애인이 운전면허 수시적성검사를 통과한 사례까지 발생했다. 고정된 숫자배열 시력검사표를 통째로 외워 검사를 통과한 것.

감사원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후천성 시력장애로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 1942명 중 131명이 수시적성 검사를 통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에는 부산 해운대문화회관 교차로에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운전자 김 모(53)씨가 자신의 뇌전증 병력을 숨기고 운전면허를 갱신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뇌전증이 발병했지만 면허갱신을 위한 적성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신병과 뇌전증 여부를 묻는 질문에 '없음'으로 체크했다는 것. 운전면허 적성검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대충대충' 적성검사 무용론

청주시 가덕면에 위치한 청주운전면허시험장. 이곳에는 하루 평균 200명의 사람들이 운전면허 적성검사와 면허갱신을 위해 신체검사장을 찾는다. 1종 면허증 기준 1만2500원, 2종의 경우 7500원을 발급수수료로 받는다. 지난 4일 적성검사와 면허갱신을 위해 면허시험장을 찾은 시민들을 만났다. 수수료를 납부하고 면허시험장 내 위치한 청주신체검사원을 찾은 시민들은 불만을 토해냈다.

청주시 용암동에 거주하는 A씨는 "갱신서류 작성비용에 시력검사 비용 5000원을 추가로 납부했다. 검사시간도 1분이면 끝나는데 추가비용을 왜 받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시력검사비용 5000원, 즉석사진 인화 비용 7000원 등을 안내하는 문구가 신체검사원 안에 부착돼 있었다. 또 시력검사를 포함한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위한 '운전면허 신체검사서' 작성 시간은 길어야 3분을 넘지 않았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시민들이 납부하는 금액은 도로교통공단에서 관리한다"며 "1만2500원 중 7500원은 면허증 발급 수수료, 5000원은 적성 검사 시 검사비용으로 사용 된다"고 답했다. 이어 "신체검사와 관련해서는 경찰공제회 담당이며 도로교통공단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B씨는 "적성검사를 통해 운전가능 여부를 판단한다고 해놓고선 제대로 된 검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며 "담당의사는 책상에 앉아 책만 읽고 확인서에 도장만 찍어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자가진단표를 허위로 작성할 경우 이를 찾아낼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자가진단표는 치매·조현병·기분장애·재발성 우울장애·뇌전증 등을 적성검사 응시자가 직접 기입해야 한다. 신체장애에 관한 부분도 이와 동일하다. 또 판정관은 적성검사 응시자가 직접 기입한 자가진단표를 보고 '적정' 혹은 '정밀검사 필요'를 확인해 날인한다.


지난 4일 취재진이 수험생을 가장해 신체검사실을 찾아갔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신체검사원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의사 C씨는 청주신체검사원장이다. 여러 명의 응시생이 C원장으로부터 적격 판정을 받고 신체검사실을 나갔다.

그들은 들고 온 '질병‧신체에 관한 신고서'를 스스로 작성하고, 신체검사실 여직원의 지시에 따라 시력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C원장에게 다가가 신고서를 내밀면, 곧바로 도장을 찍고, 그것으로 끝이다. C원장이 신고서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5초도 안 된다. 그러나 C원장은 "부적격하다는 생각이 들면 정밀신체검사를 받게 한다. 면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문제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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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작성해도 막을 방법 없어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가진단표를 허위로 작성해도 적발할 방법이 없다. 운전면허시험장 관계도 이 같은 상황을 인정했다. 방을산 과장은 "적성검사 응시자가 자가진단내용을 속일 경우 이를 제재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면허시험 간소화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방 과장은"예전에는 지역 종합병원과 제휴를 맺어 신체검사를 진행했지만 운전면허 적성검사와 면허갱신을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시력검사 등 일부검사를 제외하고는 자가진단표를 작성하는 것으로 변경됐다"고 설명했다.이를 적발할 방법은 제3자가 신고를 하거나 본인이 자진 신고하는 것뿐이지만 현실성이 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종 면허의 경우 최소한의 신체검사 및 적성검사라도 받지만 2종 면허증의 경우에는 '갱신' 절차만 진행된다. 그나마 신체검사 절차도 없다. 도로교통관계자는 "2종 면허증 소유자도 1종 면허와 동일하게 신체검사 및 적성검사가 진행됐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갱신 절차만 밟으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운전면허 발급이 불가한 정신질환자들의 경우 갱신과정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냐고 묻자 관계자는 "병원에서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경우에는 관련내역이 통보된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있는데도 병원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구별할 방법이 없다"고 말해 심각성을 더했다.

한편 지난해 청주시에서만 6만8393명이 적성검사를 진행, 납부 받은 검사수수료만 8억 원에 달했다. 올해의 경우 지난 8일까지 5만4639명이 적성검사를 받았으며 2종 면허증만 해당되는 면허갱신의 경우도 2015년 1만5547명, 올해 1만2661명 등 올해만 7만 명 가량의 운전자들이 청주시운전면허연습장을 찾았다.

65세 '노인운전자' 교통사고 4년간 70% 증가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65세 이상)운전자 교통사고 건이 4년 전에 비해 7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2011년 노인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1만 3596건이었지만 2015년에는 2만 3063건으로 크게 늘었다. 또 교통사고로 숨진 노인운전자는 2010년 547명에서 2014년 763명으로 40% 가까이 급증했다. 65세 고령 운전자의 운전능력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소재 한 호텔 주차장에 진입하던 모범택시가 고급승용차 4대와 화단을 연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당시 경찰은 택시기사가 75세의 고령이어서 순간적 실수를 한 것으로 판단, 형사입건하지 않았다.

이렇듯 고령 운전자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가운데 정부는 오는 2018년부터 7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적성검사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줄이는 대책을 발표했다. 도로교통공단은 교통안전교육을 받은 65세 이상 고령운전자에게 자동차 보험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의무교육이 아니라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230만 명 가운데 2740명만 해당 교육을 이수했다.

한편 일본・캐나다 등 교통 선진국은 고령자가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을 때 의무적으로 교통안전 교육을 실시한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운전면허를 갱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관련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 #충북인뉴스 #박명원 기자 #노인운전자 #충청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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