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 나선 박근혜,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

정국 주도권 놓으려 하지 않아... 상황 판단 제대로 했나

등록 2016.11.17 16:50수정 2016.11.1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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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버티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조선일보> 17일자 보도 중 일부를 인용한다.

"청와대는 '최순실 사태' 이후 지난주까지는 '낮은 자세'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일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해 주면 '김병준 총리 카드'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략) 하지만 이번 주 들어 '하야는 헌정이 중단되고 국가적 혼란을 부른다'는 논리 등을 들며 퇴진 요구에 선을 그었다. 16일에는 외교부 2차관 인사도 하고, 법무부에 부산 엘시티 관련 수사 지시도 했다. 거의 평소와 같은 업무를 재개한 것이다. 다음 주에는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 대통령은 정국 주도권을 놓으려 하지 않는 모양새다. 민중총궐기 바로 다음 날인 13일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대변인 발언을 지키기라도 하듯 이번 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협정은 자위대의 한국 진출을 터주고 미국의 글로벌미사일 방어체계를 가속화할 우려가 있어 시민사회가 줄곧 반대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14일 일본측과 가서명을 했고, 법제처 심사를 완료해 17일 열리는 차관회의에 상정했다. 이와 관련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14일 "한국 측이 군사보호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데에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은 16일 부산 엘시티 사건과 관련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가능한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철저하게 수사하고,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지시했다고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현재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앞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나온 박 대통령의 엄정 수사 지시 운운은 여론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다시 <조선일보> 보도로 돌아가보자. 이 신문은 친박 의원과 청와대 관계자의 언급을 인용, 박 대통령이 버티기로 나오는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이 같은 청와대와 친박의 기류에는 우선 박 대통령의 불법 혐의가 하야나 퇴진을 할 정도로 중하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한다. (중략) 결국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퇴진할 정도로 무겁지 않다는 게 여권 주류의 생각이라는 얘기다. 또 지지층이 다시 결집하는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지금 촛불 집회가 거세 보이지만, 미국 대선에서처럼 이른바 샤이 트럼프(Shy Trump·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지 못했지만 트럼프를 뽑은 사람들)'들도 많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드러나지 않은 '샤이 박근혜' 층이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일그러진 상황인식 


이 보도는 박 대통령과 주변 세력들이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먼저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인식이다. 최고 권력자 주변 친인척 비리는 한국인에겐 익숙하다. 1980년대 이후 집권한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재임 중이나 퇴임 후 친인척 비리로 곤욕을 치렀다.

집권 초기만 해도 박 대통령은 이 같은 권력형 비리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일단 가족이 없는데다, 근령·지만 등 친동생들과도 관계가 소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그가 친인척은 아니었지만 박 대통령의 위세를 등에 업고 온갖 비리를 저질렀고, 박 대통령이 가족보다 최순실을 더 가까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여론은 급냉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무자격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이는 대의 민주주의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모독이자 국기문란이다. JTBC 토크쇼 <썰전> 패널인 보수 성향의 전원책 변호사는 '국기파괴'라는 낱말까지 쓰며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는 손팻말을 들고 하야를 외치는 이유도 대통령의 국기파괴에서 찾을 수 있다.

침묵하는 다수? 실체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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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향한 적신호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십만의 참가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두 번째 박 대통령과 핵심 지지그룹은 침묵하는 다수의 존재에 의지하는 모양새다. 전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8년 비슷한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과 현 박 대통령의 처지는 비교 불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이 들끓던 2008년만 해도 이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여서 반대 여론을 제압할 힘이 있었다. 언론 환경도 정권에 우호적이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한달 가까이 이어진 촛불시위를 폭력시위로 매도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임기를 불과 1년 3개월 남긴 처지다. 그리고 지난 3년 8개월의 임기 동안 무능력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 정윤회 문건파동 등 말썽이 끊이지 않았고, 이때마다 박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꼬리 짜르기에 급급했다. 이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도 이어졌다.

정윤회 문건파동 당시 박 대통령은 이 사건을 '문건유출'이라고 규정했고, 검찰은 이 같은 지침에 따라 수사를 벌였다. 이때 검찰은 문건유출 당사자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 분실 한일 경위와 최경락 경위를 강도 높게 수사했고, 최 경위는 압박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경위도 몸 담았던 경찰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

언론환경 역시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JTBC를 비롯해 거의 모든 언론이 최순실 게이트 관련 단독보도를 쏟아내며 정권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16일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무분별한 의혹 제기를 자제하고 자중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고 나설 정도다. 정 대변인의 발언은 "최순실씨가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 때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했다"는 <채널A>의 보도에 대한 해명이었지만, 현재 청와대와 언론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정권 때리기의 선봉에 선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2008년 촛불시위나 2014년 세월호 등 보수정권에 악재가 불거질 때 마다 물타기에 앞장섰던 <조선일보>는 현 정권에서는 된서리를 맞았다. 이 신문은 지난 8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찍었다가' 되려 '부패 기득권 세력'이란 낙인과 함께 송희영 주필이 퇴진하는 시련을 겪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 정권이 이대로 기조를 유지하면 차기 대선에서 보수정권 창출이 어려워 <조선일보>가 대립각을 세운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저간의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박 대통령이 국정동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죽어도 하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버티기 작전에 돌입하는 걸 보니 박 대통령은 '죽어도' 하야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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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홈페이지 갈무리 ⓒ 시사저널 갈무리


국민 이기는 권력은 없다. 역사가 가르쳐 주는 진리다. 박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어기고 계속 버티다 혹시 아버지를 따르려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덧붙이는 글 기독교 인터넷 신문 <베리타스>에 동시 송고했습니다.
#정연국 대변인 #박근혜 대통령 #조선일보 #김종필 #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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