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어머니의 무덤 위에 십자가를 세우다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37]

등록 2016.11.18 19:40수정 2016.11.1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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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어머니, 영빈이씨의 사당 <선희궁>

선희궁과 세심대가 위치한 곳 ⓒ 유영호


서울 농학교는 그 담장을 통해 이곳이 일반 사가가 아니라 궁궐 관련시설이 있던 터였음을 알 수 있다. ⓒ 유영호


궁정동에서 백운동천(현 자하문로)을 건너 신교동으로 가보자. 위치상 서로 다른 동이지만 종로구의 특성상 불과 200~300미터 떨어진 가까운 거리이다. 이곳 신교동에 서울맹학교와 서울농학교가 있다. 약 250년 전 이곳은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1696~1764)의 사당인 '선희궁'이 있던 자리다. 무심코 지나면 학교 담장이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지만 고개를 숙여 그 담장 밑을 보면 그곳이 궁궐이었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사진참조).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00을 의미하는 수화 조각상 ⓒ 유영호


한편 정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커다란 조각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것은 이 학교 100주년 기념비로 제작된 것으로 두 손을 마주한 모습을 하며 무언가를 알려주고 있다. 수화를 모르는 나로써는 그저 '사랑한다'거나 '반갑습니다' 등을 상상해 보았지만 그것은 100주년 기념비답게 숫자 '100'을뜻하는 의미라고 한다. 오랜 학교 역사를 자랑하는 상징인 것이다.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이씨의 사당 '선희궁'의 흔적(오른쪽 제각). 그리고 뒤편 언덕이 조선의 명승지였던 '세심대'이다 ⓒ 유영호


이렇게 교정으로 들어와 좌측에 위치한 맹학교의 건물 뒤편에 이르면 선희궁의 제각이 하나 남아 있다.정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작은 제각이지만 학교 담장과 더불어 유일하게 남은 선희궁의 흔적이다.

이곳은 영빈 이씨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통상 국왕이나 왕비의 신위는 종묘에 모시지만 그가 낳은 자식이 왕이 되어도 후궁은 그곳으로 갈 수 없어 따로 모셔진 것이다. 본래 이곳의 명칭은 '의열궁'이며, 그의 묘도 '의열묘'라고 칭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빈이씨의 손자인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장조에 추존하고 이곳 영빈이씨의 사당을 '선희궁'으로, 그리고 그의 묘는 '수경원'으로 높여 불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남인, 소론, 소북 세력 등을 가까이하기 시작함으로써 이에 불안을 느낀 노론 세력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이 노론 세력에 그의 장인 홍봉안은 물론이요 생모인 영빈 이씨까지 가세하는 등 사도세자의 처가와 외척은 거의 전부가 정치적으로 그의 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빈 이씨는 영조로 하여금 사도세자를 죽이게 하는 결정적인 조언을 했다. 권력이란 이처럼 모자지간의 정을 끊어버릴 만큼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한편 이곳 선희궁 바로 뒤편에 세심대(洗心臺)라 불린 언덕은 조선시대 손에 꼽히는 경승지로서 경관이 좋아 당대 명문가들이 많이 찾았고 '선희궁'을 찾았던 영조, 정조 등 임금이 직접 거동한 곳이다. 특히 정조는 매년 봄 육상궁과 선희궁 등을 참배하면서 이곳 세심대에 행차하여 꽃구경을 하고 활을 쏘며 시를 짓고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洗心臺'라 새겨진 바위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찾을 수 없고'后泉(후천)'이라고새겨져 있다. 왕후의 샘이란 뜻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 또 '甘流泉(감류천)'이란 글자도 새겨져 있어 그 물의 맛을 상상하게 해준다. 이곳에 오르면 멀리 한양 남쪽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는데 왕후의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며 멀리 관악산을 바라보며 할머니 영빈이씨를 상상했을 정조를 그려본다.

후궁의 무덤 위에 십자가를 세우다

영빈이씨의 무덤 위에 십자가를 세운 연세대학교 <루스채플>(가운데). 다행히 수경원의 제각만은 그대로 남겨져 현재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루스체플 뒤편 건물은 음악대학이다. ⓒ 유영호


다른 한편, 영빈이씨의 묘인 수경원은 현재의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뒤편에 있었다. 하지만 1969년 이 묘를 경기도 서오릉으로 이장하였고 묘가 있던 그 자리에 루스채플를 짓고 십자가를 세운 것이다. 현재는 수경원이 있을 때 제사를 지내던 정자각만이 남아 있으며 이장하면서 남겨진 석물 등의 유물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물 가운데 수경원의 첫 이름인 '의혈묘' 편액이 있다. 이것은 영조 어필로 쓰여진 것이다.

참고로 한옥양식에 대하여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이처럼 선희궁이나 수경원의 제각으로 보았을 때 그저 '옛 건물이 남아있구나' 정도로 생각하지만 약간의 지식만 더하면 그것이그저 일반 한옥이 아니라 궁궐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붕의 용마루, 추녀마루 등을 하얗게 칠해 놓은 것을 한옥 용어로 '양성'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처리는 궁궐 등 특별히 격식이 높은 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그 위상을 말해준다. 선희궁과 수경원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도 역시 양성처리가 되어 있다. 따라서그 위상이 일반 한옥과 다름을 알 수 있다.

또한 루스채플은 1974년 완공된 건물로 한국 건축의 거장 김중업의 제자 김석재가 설계한 것으로 기성교회의 양식과 다르게 현대건축양식과 한국 전통미를 적절하게 배합해 한국교회의 새로운 양식을 모색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루스채플은 현대건축양식과 한국 전통미를 배합하여 설계된 것으로 한국교회건설의 새로운 양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 유영호


#서촌기행 #선희궁 #세심대 #루스채플 #영빈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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