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률근
어머니의 뜻을 이어 선덕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률근 원장
이윤옥
선덕어린이집을 찾아간 기자에게 정원에서 딴 잘 익은 무화과 열매를 먹어보라고 권하며 김률근 원장(76살)은 그렇게 말했다. 김률근 원장의 어머니인 여성독립운동가 고수선(高守善, 1898-1989) 애국지사는 일제강점기에 온몸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으며 한편으로는 경성의전을 졸업하여 한국인 여의사 1호가 된 수재였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선덕어린이집을 세워 평생을 어린이 교육에 헌신했다.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9월 29일 기자는 고수선 지사의 아드님인 김률근 원장을 만나러 선덕어린이집을 찾았다. 원장실로 가기 위해 재잘재잘 아이들이 수업중인 교실 복도를 지나 다다른 곳은 작은 방이었다. 원장실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작은 책상 하나가 달랑 놓인 곳에서 수수한 차림의 김률근 원장은 기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대담 중에도 아이들이 원장실을 할아버지 방을 대하듯 드나들었다. 원장과 유치원생이 아니라 정겨운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 같아보였다.
고수선 지사는 1898년 남제주군 가파리에서 아버지 고석조(고영조)와 어머니 오영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딸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 고수선 지사의 서울 유학을 도왔으며 도쿄 유학을 위해 삯바느질로 뒷바라지했다.
여자에 대한 교육이 엄격히 제한되던 시절이었지만 어린 수선은 집에서 10리(4km)나 떨어진 야학에 다닐 정도로 학구열이 높았으며 대정공립보통학교와 신성여학교를 졸업하고 드디어 경성 유학길에 오른다. 이 무렵 제주에서 서울로 유학한 여성은 고수선, 강평국, 최정숙 단 세 명으로 최정숙 지사 역시 여성독립운동가로 평생을 헌신한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