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에서 친박 압도한 비박, 재창당 시나리오 '꿈틀'

압도적 탄핵 가결에 '해체 후 재창당'에 탄력, '진박' 겨냥한 쇄신론에 당분간 혼란

등록 2016.12.09 20:43수정 2016.12.0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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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한 이정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허탈한 이정현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소연

'친박의 전성시대'가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9일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 투표, 찬성 234명과 반대 56명(무효 7명, 기권 2명)으로 압도적으로 가결되면서다. 애초 새누리당 비주류(비박근혜)가 확언했던 33명보다 훨씬 많은 여당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3당과 무소속 의원 172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을 때를 가정했을 때 새누리당 내에서 탄핵안에 찬성한 의원 수는 62명에 달한다. 비주류에서 확언한 33명을 제외하고 새누리당 의원 29명이 찬성에 합류한 셈이다. 무효 7표와 기권 2표 역시 새누리당에서 나왔다고 가정한다면 당 소속 의원 128명 중 과반 이상이 사실상 친박의 '탄핵 반대' 주장을 거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012년 총선 이후 당 주류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던 친박이 당의 패권을 완벽히 상실한 셈이다.

"친박 살아있다면 어불성설", 분당 없이 비박 주도로 리모델링

생각에 잠긴 유승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
생각에 잠긴 유승민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 남소연

이에 따라 새누리당은 급속히 '해체 후 재창당'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해체 후 재창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비주류에서 줄곧 위기 수습책으로 제기했던 방안이다. 그리고 비주류는 이정현 당대표 등 친박 지도부의 사퇴를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는 이정현 대표 등 친박 측의 반발로 계속 거부됐다. 비주류가 '당내당(黨內黨)' 격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를 출범시키면서 수 차례 압박했지만 본격적인 탄핵 국면 전까지 양 측은 비등한 힘 겨루기를 이어갔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의 운명을 가를 기준점은 탄핵 찬성표 숫자로 제시됐다. 탄핵안이 찬성 200표를 간신히 넘겨 가결될 경우,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비주류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분당(分黨)'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친박·비박 양 측은 지난 8일 의원총회에서 "그런 주장을 하려면 당을 깨고 나가", "안 나간다, 나갈 거면 너희가 나가라"는 설전까지 공개적으로 오갔다.

반면, 탄핵안이 찬성 220표를 상회하는 숫자로 가결될 경우는 전혀 달랐다. 마지막까지 탄핵을 반대하고 나섰던 친박이 사실상 '폐족(廢族)'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관측이었다. 그리고 이 관측은 이날 234표 찬성 가결로 현실화 됐다.


박근혜 탄핵 표결 참여한 김무성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 표결 참여한 김무성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남소연

당장, 비주류 측은 이날 표결 직후 '해체 후 재창당'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비상시국회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황영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이정현 대표가 많은 고민을 할텐데 오늘 결과를 준엄하게 받아들이고 당이 치열하게 변화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 집'을 짓도록 해야 한다"며 "새 집을 짓기 위해서는 헌 집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박 성향의 수도권 중진 의원도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오늘 결과를 보니 분당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면서 "(찬성표를 던진) 친박 20여 명도 비박 주도로 당을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대의에 동감한 것이다. 비박이 따로 살림 차리지 않고 당 주도권을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인적쇄신 주장도 나온다. 황 의원은 "헌 집을 빨리 허물도록 머무른 사람들이 집을 비우고 새롭고 참신한 사람들이 집을 짓도록, 그리고 국민께 그 집을 돌려드리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태 의원도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거듭 나겠다"라며 "(탄핵 반대한 친박 등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철우 의원은 "친박·비박 간 갈등이 더 심해지지 않겠나"라는 질문에 "친박이 살아 있다고 하면 어불성설 아니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11일부터 비박의 공세 본격화될 듯, 개헌 추진 움직임도 꿈틀꿈틀

투표 않고 퇴장하는 최경환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가 시작되자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은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최고위원.
투표 않고 퇴장하는 최경환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가 시작되자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은 이정현 대표와 조원진 최고위원.남소연

다만, '해체 후 재창당'이 차분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정현 당대표가 이날 표결 이후에도 즉각 사퇴는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날 긴급 최고위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연히 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12월 21일에 물러나겠다고 했던 상황보다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지만 당 조직에 공백이 없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마련하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도부 사퇴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더라도 친박 측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도 일부 친박·비박 중진들은 3 대 3 동수로 모여서 비대위원장 인선 등을 논의한 바 있다.

조원진 최고위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주류·비주류를 떠나 중진 의원들을 만나서 혜안을 좀 들어봐야겠다"면서 "(현 사태가) 빨리 마무리되고 화합될 수 있는 방안, (지도부 사퇴로 인한) 공백을 놔두고 갈 수는 없지 않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공백을 줄이기 위해 (현 지도부가) 인수인계를 한 다음에 당을 넘겨드려야 하는 게 아니냐"면서 "국회에 오래 있었던 분들이 이제는 나름대로 지혜를 좀 주셔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길 바란다"고 말햇다. 이장우 최고위원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면서 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비박계 재선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친박 핵심 인사들에 대한) 인적청산이나 출당 등은 의원총회에서 결정하게 되는데 통과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된다"면서도 "탄핵 표결 상황을 보면 친박의 결속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없지 않나 생각되는데 이번 주말까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비주류 측은 오는 11일 본격적으로 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비상시국회의는 11일 대표·실무자 회의와 총회를 연달아 열어 당 쇄신과 변화 방향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 등 새누리당 탈당파도 같은 날 모임을 갖고 탄핵 가결 이후의 상황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들은 당 외곽에서 비주류의 '해체 후 재창당' 계획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남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새누리당 해체에서 시작하자, 서청원 의원으로 대표되는 '진박(眞朴)'들은 정계에서 은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도 "이제 헌법을 유린한 일파들에 대한 철저한 단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면서 같은 주장을 펼쳤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이 개헌론과 결합돼 추진될 가능성도 높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표결 직후 "87년 체제 이후 5년 단임제 헌법에서 벌써 두 분의 대통령이 탄핵소추의결의 대상이 됐다.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정 원내대표만의 생각이 아니다. 새누리당 의원 30여 명은 이날 오전 이주영 의원을 대표로 하는 '개헌추진회의'를 출범시켰다. 이 자리에는 비상시국회의의 대표자 격인 김무성·나경원·정병국 등 비박 측만 아니라 친박 온건파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함께 했다. 박근혜 정부 안전행정부 장관 출신으로 '진박'으로 꼽히는 정종섭 의원도 자리했다.

즉, 개헌을 '연결고리'로 삼아 '진박'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구성원들을 결합하는 재창당을 진행할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이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가결로 치명타를 입은 새누리당이 차기 대선을 대비하는 '정치적 승부수'로도 보인다.
#박근혜 #탄핵 #새누리당 #비박 #재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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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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