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징역 339년, 이건 아니잖아

[리뷰] 신간 만화 <징역 339년>

등록 2016.12.13 11:38수정 2016.12.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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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역339년>
<징역339년>학산코믹스
최근 1권이 출간된 만화 <징역 339년>은 기본적으로 판타지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은유가 강력한 작품이다. 다소 그림이 엉성하고 전체적인 구성 방식이 세련되지 않다는 느낌이 있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감만은 상당하다. 작가 이세 토모카에 따르면, 이 작품은 웹 코믹 배포 사이트 '우라 선데이' 공모전에서 독자 투표로 1위를 차지한 작품이라고 한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무대는 법황이 통치하는 한 신정국가의 형무소. 신학교를 다니다가 운명을 거부하고 형무소 관리가 된 시나트는 징역 339년이라는 중형을 받고 복역 중인 소녀 헬로를 만나게 된다. 징역 339년이 가능한 이유는 이 나라가 전생과 윤회에 입각한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헬로는 태어나자마자 대역죄인의 환생이라는 이유로 감옥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질서에 대해 부정적인 시나트는 밝고 명랑한 헬로에게 끌리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시나트는전쟁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죄수들을 방치하고 후방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전생의 업보와 신분이 현생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사회. <징역 339년>이 그려내고 있는 세계관이 흥미로운 건 바로 지금 한국 사회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이 세상에 대처하며 살아가는 방식 또한 그러하다. 기존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저항하거나 다른 질서를 꿈꾼다. 누군가는 금수저로 또 누군가는 흙수저로 살아간다.

시나트는 이런 기존 질서에 대해 의문을 품고 마침내 '행동'에 이르는 인물이다. 그는 죄를 짓지 않은 현생의 헬로가 기억조차 없는 전생의 죄 때문에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국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 의문은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작가가 시나트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다음 대사에 있을 것이다.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로, 부유한 자는 부유한 자로, 천한 자는 천한 자로, 고귀한 자는 고귀한 자로 다시 태어난다. 그런 극소수의 인간에게만 유리한 법칙이 정말 진리라고 생각하나?"

영리한 작가는 이런 질문에 대해 기득권자의 공고한 반격을 전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자고로 멋진 악역이 있어야 주인공이 돋보이는 법이다. 그는 시나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래도 좋다고 해야 하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아. 지금 이 세계에 필요한지 아닌지, 그것만이 본질이며 필요한 것이 진리다."

물론 여기서 그가 말하는 '세계'는 소수 기득권자들의 세계를 가리킨다. 그 세계란 오롯이 특권층의 소유이며 일반 국민들의 것은 아니라는 얘기. 이는 결국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징역 339년>은 이야기 자체보다, 그 이야기가 품고 있는 세계관이나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이 앞으로 어떻게 형상화될지가 더 기대되는 작품이다. 게다가 이런 작품의 면모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상당히 시의적인 것이기도 하다.

<징역 339년>이 그리고 있는 부와 신분이 대물림되는 사회,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존재하긴 하나 점점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그 사회란 기실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지금 한국사회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이 어떤 때인가? 이런 부조리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라는 희대의 사건으로 표출되고 있는 시국이다. 그야말로 이 작품은 절묘한 시기에 출간됐다.

징역 339년 1

토모코 아이세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2016


#징역399년 #이세토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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