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과 2016년, 잘 나가던 두 당의 '몰락'

[데스크 칼럼] 열린우리당과 새누리당 모습에서 얻은 '오만하지 말라'는 교훈

등록 2016.12.31 17:59수정 2016.12.3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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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조사 발표 전 새누리당 표정 4월 13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 마련된 제20대 총선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 원유철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출구조사 결과발표 생방송 전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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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치는 김종인-정장선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정장선 총선기획단장 등 지도부가 4월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4.13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박수치고 있다. ⓒ 남소연


묵은해는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많은 사건들 속에는 많은 교훈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오만하지 말라'는 경고가 아닌가 싶다.

기자는 상반기 다섯 달은 회사 편집국 사무실에서, 이후 일곱 달은 국회에서 우리 정치를 지켜봤다(최순실 게이트가 처음 터진 9월 한 달 동안은 안식월을 썼으니 실질적으로는 6개월 일한 셈이다).

상반기 정치팀 기사들을 편집하는 틈틈이 기자는 트위터에 야당 지지층에 무척 암울한 총선 예상 성적표를 내놓았다(국회로 출입처를 옮긴 후부터는 트위터를 거의 끊은 상태다).

새누리당이 친여 성향 무소속을 포함해서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만한 의석수(180석)를 차지하는 것을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모두 합쳐 120석 이상 확보로 막아낼 수 있겠느냐는 관전 포인트를 내놓았다.

야3당 중 예상이 적중했던 곳은 정의당뿐이었다. 민주당만으로 120석을 가볍게 넘었고, 국민의당도 '호남 싹쓸이'로 38석의 제3당으로 약진했다. 총선 결과, 원내 1당을 차지했던 민주당은 친여 무소속을 영입한 새누리당에 1당 자리를 내줬지만, 새누리당 분당 사태로 다시 '왕좌'를 회복했다.

'총선 예상 틀린 정치부 기자' 나무라는 분들에게 변명하자면...


"그러고도 정치부 기자로 밥을 먹고 사냐"고 책망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새누리당의 과반수 미달은 내다봐도 민주당의 원내 1당 부상까지 점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언론계의 존경하는 선배인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는 4월 24일 쓴 글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박근혜 대통령과 각 정당, 후보, 언론, 유권자 등 선거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정부 4년'에 신물이 난 야당층은 "난 그래도 그 꼴은 못 본다"는 심정으로 더 절박하게 야권 승리를 위해 비호남권의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다(물론 비례대표 득표율 1위라는 국민의당 성적도 의미가 있지만, 자칫 사표가 될 지역구 표가 민주당으로 몰렸다는 것이 총선 전체 성적표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였다고 판단한다).

반면, '진박 공천' 파동을 지켜본 여당층은 실망("너무 심하다")과 이완된 마음("그래도 이기겠지")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다가 여당의 어이없는 패배를 목도하게 됐다.

'1여다야'라는 유리한 총선 구도에서조차 수도권이 돌아서고 '여당 텃밭' PK와 TK 곳곳에서 야당 지역구 의원들이 약진했다면, '좋은 시절의 국정'은 끝난 징후로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측근 최순실의 미르·K스포츠 재단 커넥션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도 그는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을 나무랐다(9월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집권기간 내내 어떤 패착을 저질러도 응원해주는 '콘크리트 지지층' 30%만 관리하면 된다는 안하무인이 하늘을 찔렀으니 한 달 뒤부터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시 가결정족수(200표)를 훨씬 웃도는 234표가 나온 것은 여당 의원들의 마음도 사지 못하는 '독선의 리더십',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최순실 게이트의 둑이 한 번 무너지고 나니 문화계 블랙리스트니,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관여니, 대통령의 불법 시술 의혹이니 하는 온갖 추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30일 특별검사팀에 수사 의뢰한 2011년의 대통령 5촌조카 살인 사건도 평소 같았으면 '밑도 끝도 없는 의혹 제기' 정도로 치부되며 여론의 역풍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두세달 동안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일어난 '난리굿'을 본 국민들은 "대통령 주변에서는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됐다.

어디부터 잘못 됐을까? 무엇보다 대통령과 측근들의 오만이 지나쳤다고 본다. 대중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을 원했다.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여당의 논리대로 야당이 발목을 안 잡으면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좋아지는지 '미래'를 쥐어주길 원했다.

'반대파 겁박, 보수층 결집 = 승리' 공식에 취해있던 대통령

이제 거의 모두가 체념하는 사실이지만, 박 대통령은 그런 복잡한 문제를 설명하고 풀어낼 만큼의 국정 능력을 가진 분이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국정원과 검찰·경찰·보수단체를 동원한 반대파들 겁박, 국정교과서와 북한 이슈 키우기로 보수층을 결집시켜 '51%'를 차지한다는 승리의 공식에 너무 취해있었다. 2004년 박근혜를 당대표로 올려세운 뒤 친노만 때려도 집안싸움으로 야당이 자멸하는 구도에 너무 재미 들렸다고 할까?

그러나 '무능(한 야당)보다는 부패(한 여당)가 낫다'는 희한한 프레임을 씌워 출범 이후 5년 내내 야당을 두들기며 여당을 편들어온 종편 패널들의 세 치 혀로도 감싸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를 좀 안다고 우쭐대는 기자들도 타성에 젖어 바닥의 끓어오르는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 해 동안 야당, 특히 민주당의 리더십은 어땠을까?

1년 전 이맘때 '안철수발 연쇄 탈당'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당을 문재인-김종인-추미애 계투조가 이어 던지며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희대의 스코어를 올린 부분은 인정해줘야겠다. 정치도 게임인지라 "아무개는 대량득점의 기회를 날렸다", "작전을 잘못 걸었다"는 둥의 후일담들이 나오지만, 야당층에게 이만큼 넉넉한 승리의 순간이 얼마만인가 싶다.

특히 원칙을 중시하는 추미애 대표와 온건한 이미지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판이한 캐릭터로, 서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당 전체를 흔들어놓을 수도 있는 조합이었다. 민주당 지지율을 40%(갤럽 12월 3주차 여론조사)까지 끌어올린 것은 여당의 자중지란 속에서 큰 실점 없이 당을 2인3각으로 이끈 '투톱'의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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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그러나 '오만하지 말라'는 저주의 주문은 이제 민주당으로 향할 수 있다.

잘 나가던 열린우리당이 2년 만에 몰락한 이유 되돌아보니...

한동안 기자에게 한나라당 압승, 열린우리당 참패로 끝난 2006년 지방선거 결과는 이해난망의 미스터리였다.

불과 2년 전 국회 과반수를 획득하고 행정권력까지 쥔 여당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지지율 40%를 웃돌았던 당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전통의 민주당을 총선에서 '광주 0석'으로 심판했던 호남 유권자들은 2년 만에 그들에게 '텃밭'을 돌려줬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도 줄줄이 패했으니 2006년 패배의 '첫 단추'가 어떻게 채워졌는지 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0년 전 초·재선이었던 열린우리당 출신 민주당 의원들을 20대 국회에서 만나 복기해본 원인들은 이랬다. 이분들의 이름을 따로 밝히지는 않겠다.

"너무 건방을 떨었다. 2004년 총선 끝나자마자 설악산으로 당선자워크숍 가서 2박3일 술판 벌이고..."
"초선의원들만 108명 모였다고 '백팔번뇌'라고 불렀잖나? 개개인은 뛰어날지 몰라도 '팀플레이'가 뭔지도 몰랐던 거다."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중 국가보안법 빼고 사립학교법과 과거사법, 언론개혁법은 어찌어찌 통과시켰는데 먹고사는 문제, 민생법안에는 특별한 실적이 없었다. 2006년 지방선거 한 달 앞두고 부랴부랴 부동산대책 후속법안 통과시켰지만 이미 '세금폭탄' 마타도어는 퍼질 대로 퍼져버렸고..."

얘기를 듣다보니 10년 전에는 안 보였던 퍼즐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답은 너무 분명했다.

마음 한 구석에 오만이 찌들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난해 풍성한 수확을 거둔 야당은 올해는 정권교체의 잭팟을 터뜨릴 수 있을까? 그걸 어떻게 답하겠는가? 이 글을 쓰는 내내 '오만하지 말라'고 읊조린 내가.
#추미애 #우상호 #김종인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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