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작가가 쓴 사후 이야기, 겁 많은 어른을 위한 책

[서평]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등록 2017.01.05 09:40수정 2017.02.2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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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동생 칼에게 형 요나탄은 노상 기침에 시달리며 앓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으며, 죽은 뒤에는 '낭기열라'라는 머나먼 별나라에서 신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다정하게 말해준다. 낭기열라에서는 병도 모두 낫고 생김새도 한결 멋있어지며 모닥불을 피우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신나는 모험을 즐길 수 있다고, 전설 속 용감한 영웅들은 모두 그곳에서 왔다고 칼을 위로한다.

하지만 얼마 뒤, 집에 원인모를 불이 나게 되고 요나탄은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칼을 구하려다 칼보다 먼저 낭기열라에 가게 된다. 그리고 칼 또한 병으로 곧 형의 뒤를 따른다. 그렇게 형제는 정말로 낭기열라의 벚나무 골짜기에서 다시 만나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는 늘 그 곳을 지배하려는 독재자와 그를 따르는 군대가 있기 마련. 독재자 텡일은 낭기열라 사람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고, 눈에 거슬리는 이들은 감금하고 거대한 괴물 용 카틀라에게 먹이로 주어 죽이기도 한다. 굶주림과 가난, 공포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두 형제와 함께 힘을 합쳐 낭기열라의 미래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준비한다. 부당한 억압으로 가득 찬 세계에 대한 저항. 하지만 그 중엔 텡일에게 충성을 맹세한 첩자가 몰래 끼어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

'낭기열라'라는 상상 속 세계를 내세우며 판타지 동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는 어쩌면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불문율을 지키기는커녕 책의 첫 머리에서 주인공 형제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게다가 사후 세계 또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못지 않게 시기와 질투, 독재, 배신, 전쟁 등이 난무한다. 심지어 이미 죽었는데도 고통 받으며 또 다시 죽기도 한다. 낭기열라에서 죽으면 그 때는 '낭길리마'라는 또 다른 사후 세계로 간다는 설명도 나온다. 죽으면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영원히 평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우리에겐 다소 충격적인 얘기다.

이런 이야기를 마음 여린 아이들에게 권해도 될까? 하지만 어쩌면 환상적인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것보다는 적당히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건 어른이건 산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며 특히 '죽음'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라고 해서 결코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좋든 싫든 인생의 문제들을 마주할 줄 알게 되면서 아이는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던가. 누가 뭐래도 인생은 실전이다.

'농장의 벽난로 앞에 앉아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이 뭐냐'는 칼의 질문에 요나탄은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되는 일이 있다'고 답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게 없으니까'라는 말도 덧붙인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한 때는 용감한 아이였지만 지금은 겁 많은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죽음보다 강한 것은 자유를 향한 열망과 용기이기 때문이다.


<말괄량이 삐삐>로 더 유명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스웨덴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로 <개구쟁이 에밀> 등의 작품도 남겼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한국에서는 1983년에 초판이 나왔고, 그동안 여러 차례 개정되어 왔는데 이번에 또 다시 새로운 표지의 양장본 특별판이 출간되었다.

현재 알라딘에서 2500부 독점 한정판매 중이며 요나탄 에디션과 칼 에디션 중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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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지은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그림 일론 비클란드 / 옮긴이 김경희 / 창비 / 정가 10,000원 ⓒ 창비


사자왕 형제의 모험 (칼 에디션, 양장)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창비, 2016


#사자왕형제의모험 #창비아동문고 #아스트리드린드그렌 #동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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