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이순신기념과에 게시되어 있는 판옥선 그림
현충사
'임진왜란과 조선 수군' 게시물은 아군의 승리 요인으로 화포, 판옥선, 거북선, 이순신의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안에 걸려 있는 다른 게시물들을 통해 그 넷을 하나 하나 살펴본다. 이곳에 들어온 목적을 이루자는 뜻이다. 역사적 인물을 찾는 여행에서는 기념관 또는 유품 전시관 등의 내부를 성심껏 둘러보는 것이 최고의 관광이자 학습이다.
게시물 '주요 해전'에 따르면 조선 수군은 1592년 5월 7-8일에 옥포, 합포, 적진포에서, 5월 29일-6월 7일에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에서, 7월 8-10일에 한산도, 안골포에서, 9월 1일에 부산포에서, 1597년 9월 16일에 명량에서, 1598년 11월 18일-19일에 노량에서 큰 전투를 치렀다. 게시물은 단지 한 곳, 1597년 7월 16일에 칠천량에서 벌어진 조선 수군 최대의 참패만 생략하고 있다. 그 무렵 이순신은 투옥되었다가 풀려나 백의종군 중이었고,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칠천량 전투를 총지휘한 장수는 원균이었으므로 '충무공이순신기념관'과는 직접 관계되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의종군과 명량대첩' 게시물도 이에 대해 가벼운 설명을 해준다.
'1597년 2월 이순신은 조정의 출동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서울로 압송되어 옥에 갇혔다. 4월에 백의종군의 명을 받고 풀려났지만 곧 어머니를 여의는 슬픔을 겪었다. 이 때 일본의 재침략으로 7월 16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패전하자 이순신은 7월 23일 다시 통제사로 임명되어 흩어진 조선 수군을 일으켜 세웠다. 9월 16일 명량에서 불과 13척으로 133척의 일본 전선을 상대로 싸워 기적 같은 승리로 다시 나라를 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