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아파트보다 초가집이 더 신기해!"

[그림과 아이와 함께 여행] 남도여행-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등록 2017.01.11 13:42수정 2017.01.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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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전시용으로 조성된 여타의 민속마을과는 다르게 일반서민들이 실제 거주하는 초가집성지인 낙안읍성 민속마을.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잠이 깬 아이들 옷을 입혀 산책에 나섰다.
순천만을 오후 내내 둘러보고 저녁에 묵을 숙소로 정한 곳은 낙안읍성 민속마을 내에 위치한 민박집이었다. 다음날 낙안읍성에서 일찍 아침을 시작하고 싶었던지라 성 안에 자리한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고 싶은 심산이 있었다.

이 초가마을의 자연적인 전통주거양식에 매료된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것을 증명하듯, 낙안읍성 내의 민박집을 예약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오랜 인터넷 검색과 전화 끝에 노부부께서 운영하시는 작은 초가집의 소박한 방을 얻을 수 있었다. 잘 찾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순천만을 나와 게장집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기 위해 차에 타니 8시가 훌쩍 넘은 시각. 어둑해진 밤, 차량이 혼잡한 도로를 몇 번의 교차로에 걸쳐 지나니 인적은 물론이거니와 차량도 드문 구불구불한 길에 접어들었다. 깜깜해질 것 같은 눈을 치켜뜨고 네비게이션의 상냥한 안내에 의지해 귀를 열었다.

40여분이 지나 가까스로 아이들 잘 시간이 가까워진 시각에 도착하여 우리가 묵을 민박집과 가까운 남문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밤눈을 하고선 더듬더듬 걸음을 떼어 남문 왼편 길에 들어서니 민박집 이름이 붙은 작은 현판이 정겹게 달린 싸리문이 보였다. 주인할머니께서는 아직 주무시지 않고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100여 채의 집들 중 유일하게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던 작은 초가집의 빛이 어둠속에 잠겼고, 그 따스한 어둠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된 여행의 하루를 마감하는 긴 밤을 났다.

일러스트 / 우리의 밤을 지켜준 아름답고 눈이 부신 초가집 한 채 ⓒ 권순지


아파트보다 초가집

전시용으로 조성된 여타의 민속마을과는 다르게 일반서민들이 실제 거주하는 초가집성지인 낙안읍성 민속마을.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잠이 깬 아이들 옷을 입혀 산책에 나섰다. 남문 왼편에 위치한 민박집을 나와 왼쪽 골목으로 더 들어가니 옛 빨래터를 복원해 놓은 샘터가 있었다. 그리고 펼쳐지는 둥그스름하게 초가를 얹은 집들의 아침풍경. 갑자기 딸이 앙증맞게 소리쳤다.


"엄마! 저건 다 버섯 같아!!"
"응. 버섯 같아? 모두 집이야. 아주 오랜 옛날에 사람들이 저런 집에서 살았어."

자기도 거들겠다는 듯 아들도 물었다. 기분 좋은 진지함에 취할 때면, 아들은 꼭 존댓말로 표현한다. 까다로운 녀석에게 이 초가마을이 마음에 든다는 징조이다.


"그럼 저건 무슨 집이에요?"
"초가집. 흙으로 만든 집 위에 볏짚으로 만든 지붕을 올린 집이 초가집이야. 저것 봐. 우리도 어제 다 같이 초가집에서 잔거야."

"엄마! 우리 아파트보다 초가집이 더 신기해!" 

그럴 만도 하다. 적당한 조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건물이 모인 아파트 단지의 차가운 기운은 어찌할 수 없다. 각각의 건물들이 동으로 나뉘어 홀로 높은 층까지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그 안에서 각자의 삶을 아등바등 홀로 애잔하게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아이들이 그 전부를 알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저 매일 겪는 답답하고 차가운 아파트의 아침 기운보다는 견고한 성벽이 안아주듯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초가마을의 따뜻한 아침 정취가 신선했을 것이다. 늘 하늘과 가까이 잠이 들다 땅과 붙어 사방에 칠해진 흙냄새를 맡으며 자는 밤은 내게도 이색적이었으므로.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니 가슴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편리한 현대의 주거문화와 동떨어져 불편하면서도 전통적인 삶을 여전히 지켜가고 있는 이곳 주민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가슴에 똬리를 튼 것이다. 들락날락하는 다수의 관광객들로 인해 전통과 현대의 어중간한 지점에서 방황은 할지라도 말이다.

일러스트 / 성벽계단을 오르는 두 아이와 엄마 ⓒ 권순지


하늘과 산과 성벽이 지켜주는 마을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이나마 성벽을 걷기로 했다. 계단을 타고 올라 두 발을 성벽 위에 내려놓았다. 낙안읍성 내의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내다보였다. 아늑한 엄마 품 같던 마을 길 위에서와 높은 성벽위에서의 느낌은 지형적인 효과로 비슷한 기분을 자아냈다.

성벽이 마을을 감싸주었다면, 성벽을 감싸주는 건 둘레를 돌듯 이어져있는 '산'이었다. 산 위에 걸쳐있는 구름까지도 이 평화로운 마을을 지켜주려는 신의 수호물 같았다. 분지형태의 지형은 그만큼이나 포근했다.

아이들은 성벽에 올라 두 눈이 풍선 불어지듯 커지면서도, 조잘조잘 입은 멈추지 않았다.

"구름이 쪼개져서 쏟아질 것 같아. 어쩌지?"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딸과 성벽 중간 중간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은 왜 있는 거냐며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아들. 관심사와 표현법이 다른 남매와의 대화는 늘 재밌다.

성벽에서 내려와 온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물레방아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마을의 굽이굽이 오솔길을 내달리기도 했다. 한참을 장난치며 걷다 뛰다 하는 아이들이 저만치 앞에서 한복 입은 할머니 한 분을 마주치더니 내게 갑작스레 소리쳤다.

"엄마~할머니 일하러 가신대!"

아이들 성화에 가까이 가보니 일하러 가신다는 '할머니'는 우리가 묵은 민박집 할머니였다. 전통혼례 체험관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신다는 사실을 덤으로 알았다. 곱게 차려 입은 한복이 거추장스러울 만도 하지만, 할머니는 밝은 표정으로 급하게 체험관으로 넘어 가셨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는 민속장터나 기념품점 이외에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전통체험관이 여럿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이 일부 그 곳으로 출근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다음 여행지로 떠날 채비를 하며 민박집 할아버지의 구수한 사투리를 통해 들었다.

같은 곳에서 태어나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도 이어 하시던 할아버지. 그동안 집을 가꾸고 수리하며 버텨낸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빠르고 강한 남도사투리로 엮어내시는 통에 나는 절반은 알아듣고 나머지는 못 알아들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할아버지의 머리칼 아래 주름져 있는 이마의 굴곡에 그 분의 인생이 전부 담겨 있었다. 못 알아들은 이야기들은 모두 할아버지 이마의 굴곡에 담고 내 눈에 다시 옮겨 담았다.

민박집 할아버지의 생 이전에 하늘과 산과 성벽이 온전히 지켜주는 이곳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몹시도 궁금해지는 마음을 뒤로 하고 아쉽게 싸리문을 나섰다. 무한한 아이들의 호기심이 내게로 옮겨 붙은 듯 생각이 이어져 입안까지 말라붙는 기분이었다. 입이 말라 물을 몇 차례나 머금어야 했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낙안읍성 #낙안읍성민속마을 #순천여행 #남도여행 #초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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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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