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팡테옹
김윤주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1862)은 소설이라기보다 대서사시다. 프랑스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영화와 뮤지컬로도 가장 많이 만들어진 작품 중 하나이다. <장발장>이라는 제목의 어린이 문고판으로도 만들어져 널리 읽히고 있다. 하지만, '빵을 훔친 죄로 투옥되었던 장발장이, 성당의 은촛대를 훔쳐 다시 위기에 처하는데 자애로운 신부의 은혜로 새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는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2천 5백여 페이지에 다섯 권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작정을 하고 덤빈다 해도 여간한 인내심과 끈기가 아니고서는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1845년부터 1867년까지 집필에만 17년이 걸렸고, 이야기의 단초를 찾고 구상한 기간이 무려 35년이나 된다니 왜 안 그렇겠는가. 1815년, 일흔일곱 살 미리엘 주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소설은 1832년 6월 실패로 끝나버린 학생봉기를 주요 제재로 삼고 있다.
연약하고 추악한 인간 군상, 그들의 우연과 필연이 복잡하게 얽혀 이루어가는 사회와 역사, 허망한 삶을 끌어가는 철학과 종교, 거역할 수 없는 숙명 속에서도 자유와 평등, 사랑과 희생의 고결함을 지켜가는 숭고한 모습까지 인간사의 거의 모든 요소가 집약된 작품이다. 작품을 뚫고 흐르는 무거운 서사와 그 사이로 얼핏얼핏 드러나는 가녀리고 애달픈 서정, 작가의 무한한 지식을 보여주는 상세하고 장황한 배경 설명, 틈틈이 등장하는 유머까지, 이 작품은 소설이기도 하고, 시이기도 하고, 가끔은 무슨 대백과사전 같기도 하다.
<레미제라블>의 장대한 서사만큼이나 위고의 삶도 파란만장했다. 일찌감치 문학적 명성을 얻고 정치 시인으로 이름을 떨치던 위고는 40대 초반에 이미 상원의원, 국회의원으로 선출된다. 자신이 지지하던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제2제정을 선포하자 그에 맞서 날선 비판을 하다 추방된다. 이로 인해 1851년부터 1870년까지 20년이나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망명지에서의 고독을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켜 무수한 대작을 이 시기에 집필하고 출간한다. 이때 탄생한 작품이 <레미제라블>이다. 35년을 품고 있다 17년에 걸쳐 집필한 다섯 권의 책이 차례로 출간되던 1862년은 그의 나이 예순이 되던 해였다.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대혁명 직후 태어나 80여 년의 세월을 장수를 하며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던 길고도 고단한 혁명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었다. 드물게 문학가뿐 아니라 정치인으로도 사랑을 받았던 행운아다. 1885년 국장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 때는 밤새도록 개선문 아래 횃불에 둘러싸인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고, 이튿날 팡테옹까지 이어진 장례 행렬에는 수만 명의 파리 시민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