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로스토크 항에서 덴마크 게드세르 항으로 가는 대형 페리
한성은
사실 그냥 크게 설레고 싶었던 것이다어제 저녁 해가 서쪽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해가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올랐다. 지금까지 12747번을 경험했던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세상이 점점 밝아져 가는 것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을까? 지난 날들을 생각해보면 아침 해를 기다리는 날보다 제발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든 날들이 많았다.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다가오는 월요일로부터 도망칠 방법은 없을까 궁리를 했다.
오늘도 역시 정확하게 동쪽에서 해가 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을 바라보며 설렜다. 베를린에서 로스토크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기지개를 켜는 날이 내 인생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곳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낯선 공간이 나에게 설렘을 선물하고 있다.
여행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다는 숭고한 사건이 적어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여행을 계속하면서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가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왜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장기 여행을 떠나고 싶었을까. 짧은 휴가 기간을 이용해서 여러 번 나누어도 되는 일을 굳이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면서까지 떠나야 했을까.
단지 외국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과 낯선 곳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을 동시에 충족하고 싶었다. 사실 그냥 크게 설레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커다란 설렘이 곧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종류의 사랑 중에서 굳이 '첫사랑'을 쉬이 잊지 못하는 이유도 그렇다. 가장 크게 설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설레는 마음이 바로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설렘이 곧 행복한 삶으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는 여행도 끝이 날 텐데, 여행이 끝난다고 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행의 설렘 덕분에 나는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 여행을 계속하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외부 자극들을 수용하면서 내 사고가 점점 풍성해지고 있다. 비싼 애플워치를 사고 내 손목에 차던 날 피부로 전해지던 금속의 차가움이 주던 설렘보다 이 여행의 설렘이 나에게 훨씬 값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젯밤에도 나는 기대하며 잠들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침의 공기를 가득 마실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덴마크부터 물가가 무지막지하게 비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