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쿠쿠아프리카 잠비아 전통음식
고기복
설을 맞아 윌리가 친구들에게 대접하겠다고 한 것은 아프리칸 스타일 치킨인 응쿠쿠였다. 정확히는 잠비아식 양념통닭이다. 통닭을 구운 다음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토마토와 야채, 양념을 얹어서 알록달록함을 자랑한다. 고기와 야채를 같이 먹을 수 있어 다이어트 식단으로 추천할만한 음식이다. 윌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권한 응쿠쿠는 구운 고기에서 느낄 수 있는 불맛과 토마토와 야채가 주는 시원한 맛이 잘 어우러졌다.
"응쿠쿠는 로컬 이름이라 영어로 뭐라 하는지 몰라요. 시골에선 응쿠쿠를 먹을 때 옥수숫가루로 만든 시마를 같이 먹기도 해요. 잠비아에서는 새해엔 소를 잡고, 그 피를 마시며 건강을 기원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서구화돼서 음식도 잠비아 음식이 뭔지 몰라요. 프리타 같은 경우도 사람들은 그냥 도넛이라고 알지만, 우리는 도넛이 뭔지도 모를 때부터 먹던 거예요."연휴 기간에 대학로 혜화동 성당을 다녀 온 리차드는 응쿠쿠가 입에 맞는지 포크 대신 손가락으로 집어먹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거, 필리핀 음식이랑 맛이 비슷해요. 소금하고 구운 맛이 비슷해요.""혜화동에서 뭐 했어요?""친구들 만났어요. 롱롱 할러데이(긴긴 명절) 재미없어요.""이번에 할러데이 짧은 건대""일 없어요. 할러데이 컨티뉴(계속)"리차드는 설 연휴에 친구들을 만나서 일자리를 알아봤다고 했다. 서울에 가면 좀 더 많은 소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연휴가 끝나도 계속 이어질지 모르는 실직이 두려운 리차드에게 설은 특별할 게 없었다. 친구들마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설에 고향에서 겪던 일을 똑같이 경험한 이린나라와 종교, 개인에 따라 대한민국 설 풍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태국과 같은 설 문화가 있는 나라는 한국의 민족 대이동을 충분히 이해한다. 비록 설 풍습이 없는 나라일지라도 한국처럼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이둘 피트리'라는 절기를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 역시 그런 부분은 쉽게 이해한다.
이린은 이번 설에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일을 똑같이 경험했다. 그 동안은 설이라고 해도 공장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작년 5월에 뇌종양으로 쓰러진 후 회사를 그만 둔 터라, 기분도 전환할 겸해서 김천에 있는 사촌을 찾아가기로 했다. 사촌은 이린이 뇌종양으로 쓰러져 처음 수술 받았을 때 간병하러 올라왔었다. 짧은 연휴 때문에 직장이 있는 사촌이 올라오는 것보다 요양 중인 자신이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여유를 갖고 연휴 시작 전인 목요일에 출발했다.
용인에서 대전을 거쳐 김천까지 버스를 갈아탈 때마다 조심스럽게 목적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내려갔다. 평소와 달리 터미널이 붐빈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내려갈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올라올 때 생겼다. 대전에서 용인행 시외버스를 타는데 배차 간격이 한 시간이나 되는데다 승객이 너무 많았다. 여유 있게 터미널에 도착해서 여섯 시 이전에 버스를 타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졌다. 게다가 여덟 시에 탈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줄을 잘못 섰다가 놓친 탓이다. 결국 밤 아홉 시가 되어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분명히 용인이라고 쓴 버스 앞에서 시작된 줄에 섰어요. 그런데 그게 두 줄이 두 개였어요. 길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한 줄은 용인이 아니었어요. 인도네시아에서도 이둘 피트리 때 무딕(Mudik, 귀성)하면 그런 일이 꼭 있어요."이린은 3박4일간의 여행이 마치 고향에서 이둘 피트리 때 귀성하며 겪었던 일을 한국에서 겪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천에 내려간 김에 구미와 대구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교통편이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그만 뒀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보낸 시간만 열두 시간이 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런데도 움직이길 싫어했던 걸 보면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며 풀이 죽었다. 설이라고 특별할 게 없지만, 고단한 고향 풍경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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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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