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에 입대한 아들의 수료식날,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고상만
야박한 조교의 행동, 잊을 수 없어그래서 다시 아들을 부대로 데려가고자 차를 운전하여 달려가 보니 어느새 주위는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 하나를 가지게 됩니다. 차가운 12월의 밤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산골짜기 낯선 군부대 연병장에 아들을 내려주던 때였습니다. 저는 이제 또 헤어질 아들을 '마지막으로 꼭 안아주고 싶어' 운전석 안전띠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연병장에서 상황을 통제하고 있던 조교의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가족은 하차하지 말고 그대로 차를 돌려 부대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조 안내였습니다. 순간 '아차'했습니다. 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힘내라는 말을 전하려고 차에서 내리는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안 했는데 그것조차 자칫하면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운전석 창문이라도 내려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 야박한 조교의 행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창문을 내리는 순간 조교가 다가와 창문을 가로막는 것 아닌가요? 결국, 저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창문을 올린 후 그대로 연병장을 돌아 부대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조교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항의라도 하고 싶었으나 그로 인해 제가 떠난 후 아들이 피해 입을까 싶어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오며 제 눈에서는 내내 '소리 없는' 눈물이 났습니다. 턱선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 없이 서러웠고 무력한 제 처지가 슬펐으며 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런 내 뒤에 앉아 있던 아내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아내 역시 홀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 역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또 있습니다. 2014년 가을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부대 개방의 날'이라며 방문을 원하는 사병 부모는 찾아오라는 안내였습니다. 늘 부대 정문 옆 낡은 면회실까지만 가서 아들 얼굴만 보고 왔는데 마침내 아들이 잠자고 생활하는 공간까지 개방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군인 부모를 모시고 부대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하니 어떤 행사를 준비했을까 싶어 내심 기대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마침내 찾아간 아들의 '부대 개방의 날' 행사. 고백하자면 저는 군악대라도 나와서 '빵빠레'라도 불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부모님들이 잘 키워서 보내주신 아들 덕분에 이 나라가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고 이 나라의 고마운 존재입니다."이런 덕담이라도 하면서 환영의 꽃가루라도 뿌려주지 않을까? 그러면 곁으로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운 군인 부모'임을 스스로 뿌듯하게 여기고 싶었습니다. 그런 후 아들의 손을 잡고 아들이 생활하는 부대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것을 상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하며 들어선 부대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뭐 그런가 하면서 연병장에 차를 세운 후였습니다.
국가보안법 처벌을 각서하라니, 이게 부모에게 할 짓인가어디로 가야 아들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하던 그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도착하는 부모님들은 장병들을 만나기 전 먼저 연병장 구령대로 모여 달라"는 안내였습니다. 그래서 구령대로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긴 탁자 위에 볼펜과 서류 종이가 흩어져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이어 들린 부대 측 관계자들의 목소리.
"지금 보이시는 서류에 각서를 작성하신 후 장병들을 만나시면 됩니다. 볼펜으로 위 각서에 성명과 주소, 연락처, 그리고 서명을 해서 저에게 제출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