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지텍고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2017.1.31) 서울에서 유일하게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겠다는 서울디지텍고의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에 의하면, 교장과 교감의 국정교과서 채택 주장에 대해서 단 한명의 교사도, 학부모도, 지역의원도 질문이 없고, 단 한 명의 토론도 없었다.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디지텍고등학교
지난 1월 31일 서울디지텍고에서 학교운영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의 주요 안건 중 하나가 국정교과서 채택 문제였다. 이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 날 학운위 회의록을 보자.
교감(학운위원은 아님)이 "국정교과서와 비상교육으로 복수 채택하여 다양한 시각의 교육을 통해 균형잡힌 역사교육을 하고자 합니다. 여건이 되면 연구 학교를 신청하고, 신청하지 못하면 교육부에 교과서를 신청하고자 합니다"라면서 국정교과서 복수 채택 제안 설명을 했다.
질의와 토론을 갖도록 하겠다는 위원장의 발언에 이어서 곽일천 교장이 "오늘 최종본이 공개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근대사 비중을 높게 한 점과 역사의 강조점을 균형 있게 폭넓게 설명하고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학생들이 이런 부분을 토론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면서 추가로 국정교과서 복수 채택을 하겠다는 발언을 추가한다.
근현대사를 대폭 줄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정교과서가 근대사 비중을 높였다는 허위 사실을 근거로 국정교과서 채택을 부추긴다. 그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의 질의나 토의는 없었다. 어떤 교사도, 어떤 학부모도, 어떤 지역위원도 국정교과서 채택에 대해서 질문도 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채택을 결정하는 학운위에서 단 하나의 질의도 없었고, 교장과 교감의 도입 주장을 제외한 어떤 토론도 없었던 것이다.
사립학교에서는 교사의 대표인 학운위 교원위원을 교사들이 직접 뽑지도 못한다. 3배수 정도로 추천을 받아서 학교장이 자기 마음대로 임명한다. 교사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등을 한 교사를 제외하고 꼴찌를 한 교사를 학교장이 학운위원으로 임명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학교장이 학운위 회의 결과를 따라야 할 의무도 없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의 실상이다. 국공립과 다르게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는 심의의결기관도 아니고 자문기관이다. 그래서 "국공립학교와 달리 자문기관이기 때문에 반드시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한다.
서울디지텍고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면서 단 하나의 질문도, 자유로운 토론도 없었던 것은 이런 구조적 모순의 결과다.
교과서 채택 문제에 왜 교사들 의견은 없을까지금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겠다고 나서는 학교들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채택하는데 교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서울디지텍고, 항공고, 문명고 모두 교장이나 법인이 국정교과서 채택에 앞장 서고 있지, 수업 하는 교사들이 국정교과서를 주장하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거꾸로 김천고에서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했고, 오상고는 10여명의 부장들이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서울디지텍고를 조금 더 자세히 보자. 서울디지텍고가 국정역사교과서를 강행하면서 정작 역사와 사회 교사의 입장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온다. 실제로 이 학교에는 역사 교사가 1명인데 기간제교사이다. 현재는 3월에 새로 수업을 시작하는 신임 기간제 교사뿐이라고 한다.
그 기간제교사가 국정교과서를 채택해 달라고 했을 가능성도 낮아보이고, 혹시 그랬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것이 진심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그러니,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논쟁에 역사와 사회선생님을 비롯한 이 학교 평교사들은 없고 교장 선생님의 주장만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장면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겠다고 할 때에도 곽일천 교장만 있었지 정작 그 학교 역사 교사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서울교육청이 추진한 친일인명사전의 도서관 비치를 거부할 때도 사서교사나 역사교사가 반대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최근 학생들의 종업식에서 학생들에게 교장이 1시간이나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훈화(자기는 토론회라 함)를 했다는데, 이에 대해서도 디지텍고 교사들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