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오마이뉴스
만약 북한의 권력을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남이 쥐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살당한 인물은 김정남이 아니라 그의 이복동생 김정은이었을 수도 있다.
'김정남 암살' 사건은 독재국가, 전제국가에서 흔히 벌어져 온 '정적에 대한 물리적 제거'의 전형적 모습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KCIA(한국 중앙정보부)가 김대중을 납치했고 김대중은 쓰시마 해협 어딘가에 떠 있는 소형 선박 위에 있다는 걸 알아냈다. 하비브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내 자기는 김대중 납치에 대해 알고 있으며 김이 죽는다면 미국과 서울의 관계가 끝장날 우려가 있으니 김을 살릴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 압박했다. 정오가 조금 지나 비행기 한 대가 김을 태운 배 위를 낮게 날았다. 그 뒤에 납치범들은 곧바로 그의 손발을 풀어주고 마실 물도 건넸다. 그날 밤늦게 김대중은 서울의 자기 집 근처 길에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발견됐다. 후일 김대중 대통령은 그 비행기는 CIA가 보낸 것이며 자기의 석방을 명령한 것도 CIA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나는 김 대통령에게 그건 CIA의 비행기가 아니라 그를 죽이지 말고 풀어주라는 서울의 명령을 전달하는 한국 정부의 비행기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2015년 4월, 도널드 전 그레그 전 주한대사의 '역사의 파편들 (Pot Shards: Fragments of a Life in CIA, the White House, and the Two Koreas)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이었던 도널드 그레그 전 대사의 증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납치 사건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김대중 살해 미수 사건'이라야 맞다"(김대중 자서전)고 규정하는 근거의 하나다.
북한이 박정희 독재정권을 능가하는 스탈린 식 전체주의 국가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정적에 대한 물리적 제거'라는 측면에서 볼 때, '김대중 납치 사건'과 '김정남 암살' 사건의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일까. 또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살해한 진보당 조봉암 사건과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태조 이방원이 왕이 되기 위해 이복동생인 방석을 죽인 조선 초의 '왕자의 난'과 역시 왕이 되기 위해 수양대군이 동생 안평대군과 조카 단종을 죽인 '계유정난'과 북한 김씨 왕조의 '김정남 암살' 사건은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반복된 똑같은 사건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마이TV <장윤선의 팟짱>에서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분석하고 평가한 것이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규탄받아야죠", 김정은이 "공포정치를 해왔다"는 대목은 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