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신의 강림은 무엇보다 강력하다.
SNS 갈무리
단기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전전하던 삶에서 벗어나자 씀씀이가 달라졌다. 처음 몇 개월은 쌓인 빚을 청산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거기서 해방되자 스스로 보상을 주고 싶었다.
액수 뒷자리에 '0' 하나 더 붙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면 망설이지 않고 물건을 산다. 버스비조차 아끼려고 걸어 다니던 시절도 있었건만, 이젠 발이 아프면 가까운 거리라도 주저하지 않고 택시를 잡는다. 미터기 안에서 달리는 LED 말의 걸음질에 초조하지 않은 것도 심정적인 변화라면 변화랄까.
추위나 더위에 시달리는 계절, 약속 시간이 애매하다면 길에서 버티지 않고 카페에 들어가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저가형 음료를 파는 카페에 들러 메뉴판 가장 위에서 최저가(주로 아이스 커피)를 찾던 눈길은 이제 훨씬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이전엔 미처 몰랐다. 휘핑 올라간 음료의 달콤함이 이런 맛이라는 것을!
지름신의 강림은 무엇보다 강력했다. 일단 지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나도 지갑도 휩쓸리는 건 순식간이다. '탕진잼'의 재미는 물건을 구매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맛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짜릿한 건 통장 잔고를 탕진했는데도 여전히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수십만 원을 주고 타투를 새기는 일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몸에 평생 남을 '의미있는 문양'에 돈을 쓰는 게, 스스로 만족스럽다면 아까울 게 뭐란 말인가? 애초에 돈을 쓰면서 '본전 생각'에 매달리거나, '이 돈을 아끼면 한 끼는 더 먹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삶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