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뽀로역에서삿뽀로 역에 도착한 쇄빙 인부들. 삿뽀로의 날씨는 생각만큼 춥지 않다.
이정혁
출발 당일, 인천 국제공항에 모여든 다섯 중년 사내들의 복장은 단연 돋보였다. 유빙 관광이 아닌 쇄빙 작업을 떠나는 인부들 모습이었다. 영하 40도에서도 끄떡없다는 종아리를 덮는 부츠를 신고, 히말라야 등산 복장을 하고 온 아저씨들은 공항복장의 새 역사를 쓰고 있었다. 짐을 최대한 줄여야 신속하게 이동한다는 말만 듣고 가급적 모든 것을 껴입고 쓰고 신고 온 것이다.
주위에서 힐끔거리는 것쯤이야 무시할만한 나이 아니던가? 외관상으로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인천 공항의 난방이 국제 기준을 지나치게 초과한 것 아니냐는 불만을 쏟아내기 전까지는.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가 온 몸을 뒤덮었다. 외부 방수는 가능했지만 내부에서 차오르는 물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동상을 염려해서 신고 온 부츠가 땀띠와 무좀의 양식장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저가항공의 특성인 출발 시간 지연까지 겹쳤다.
하지만 그 정도의 고통쯤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극복할 만한 것이었다. 전날 잠을 설쳐서인지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다. 일행 중에 감기약을 챙겨온 사람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한 봉지를 톡 털어 넣었다. 약이 좀 많다 싶었지만, 한방에 감기를 떨치고 놀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좁디좁은 비행기 좌석에 간신히 안고 나서부터 온 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가려운 부위를 열심히 긁다보니, 어느 순간 좌석이 한결 여유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불안과 혐오가 뒤섞인 시선을 보내며 반대편으로 몸을 웅크린 것이다. 비행기가 출발함과 동시에 손등과 목 부위부터 반점이 생기며 온 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약물 알러지였다. 여행에 들떠서 방심한 것이다. 나름 의료인이라는 사람이 아무 약이나 주워 먹다니.
승무원을 불러 항히스타민제가 있는지 물었다. 옆 사람에게는 약 때문에 발생한 알러지라서 전염되지 않는다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고개는 끄덕이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나와는 대조적으로. 약이 피부색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동안, 온 몸을 쉴 틈 없이 긁고 있는 나와 발에 무좀균이 왕성하게 번식을 시작한 네 사람의 중년을 실은 홋카이도 행 비행기는 부지런히 창공을 가르고 있었다.
신 치토세 공항까지는 두 시간 반쯤 걸린다. 아침 9시에 공항에서 만나 12시에 비행기를 탔으니, 오후 3시 쯤 일본에 도착한 셈이다. 공항은 생긴 지 얼마 안되서인지 깨끗하고 규모가 컸다. 전철을 타기 위해 삼십분 넘게 걸어야 할 만큼 쓸데없이 컸다. 축축한 몸과 발에,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은 훈련소에서의 구보를 연상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