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가 참여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 녹화 현장 ⓒ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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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는 슈퍼맨?
"방송작가? 돈 잘 버는 직업 아닌가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송작가는 드라마작가다. 이름있는 드라마작가의 경우 회당 수천만 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ㄱ씨는 드라마가 아닌 예능·시사교양·보도 프로그램과 같은 비드라마 방송작가다. 업계에선 이들을 '구성작가'라고 부른다. 이름부터 다르듯, 하는 일도 드라마작가와 다르다.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구성부터 취재, 섭외, 자료정리, 촬영일정 계획, 프리뷰, 자막 달기 등 업무 전반을 도맡는다.
업무의 양이 많은 만큼 업무 강도가 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밤샘 야근은 기본이고 집에도 일거리를 싸 들고 간다. 일이 너무 힘들어 구성작가의 절반이 1년 안에 그만둔다고 한다. ㄱ씨는 그래도 참고 버텼다. 힘들게 만든 프로그램이 처음 방송될 때의 쾌감을 잊을 수 없어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일을 시작한 지 보통 1년이 지나면 막내(신입) 작가를 벗어나 서브 작가로 올라선다. 이때 비로소 프로그램 안에서 5분 내외의 짧은 코너를 맡아 진짜 대본을 쓴다.
"저희는 경력에 따라 막내 작가, 서브 작가, 메인 작가로 분류를 해요. 죽을 듯이 힘든 5~6년의 막내, 서브 시절을 거치면 메인이 되는 거죠. 메인이 되기 위해 당연히 힘든 일도 참고 견뎌야만 하는 줄 알았어요."100만 원 월급보다 힘든 것은 인격모독정작 ㄱ씨가 들려준 막내 작가의 업무조건은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방송작가 3년째인 현재, 그녀의 월급은 약 130만 원. 첫해에는 90만 원을 받았다. 실제 지난해 언론노조가 발표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644명의 응답자 중 1년간 총수입이 '1000만 원 이상~2000만 원 미만'이라는 응답이 53.1%(342명)로 가장 많았다. 이들의 평균 수입은 1558만 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직장인 평균 연봉 3250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
고향인 여수에서 올라와 서울생활을 하는 ㄱ씨는 월세 50만 원이 가장 아깝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는데 월급의 거의 절반이 집값으로 빠지니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러나 적은 월급보다 더 힘든 건 인격모독이다.
ㄴ씨(24)는 지난해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었다. 방송계에 만연한 성희롱을 견딜 수 없어서다. 외주제작사 소속이었던 ㄴ씨는 같이 일하던 PD에게서 수차례 성적인 농담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회식자리에서 술 따르기를 강요하는 일이 계속되자 모멸감과 동시에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회의를 가졌다. 이는 비단 ㄴ씨만의 일이 아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58.9%(362명)의 작가가 성희롱이나 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위계질서가 분명한 방송국 조직문화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게다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방송작가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성폭력뿐만이 아니다. 방송작가는 욕설, 폭행, 사적 심부름 등 온갖 인격모독에 시달린다.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생길 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일을 그만두기 전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한 ㄴ씨는 "원래 여기가 그래, 어쩔 수 없어"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