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조선시대 여성. 경기도 여주시의 명성황후 생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이쯤 되면, 아내 공부를 뒷바라지하던 서유본의 태도에 변화가 생길 만도 했다. 당장 먹고 사는 게 급했으니, 예전처럼 아내 공부를 뒷바라지하는 게 힘들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아내가 차 농사를 하면서도 계속 집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의 '외조 전선'에는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이 점은 <빙허각 전서>의 일부인 <규합총서> 서문에도 나타난다. 이 서문에서 빙허각은 자신이 남편의 서재에서 필요한 책들을 얻어 보고 그걸 기초로 책을 집필했다고 말했다. 집필에 필요한 문헌을 찾는 데 남편이 협조했음을 밝힌 것이다. 오늘날의 도서 서문에 '누구누구가 이 책의 집필에 도움을 줬다'고 밝히듯이 빙허각도 책 서문에다가 그 점을 밝힌 것이다.
서유본의 역할이 문헌 찾아주기에 그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기록이 있다. 그는 자기 문집인 <좌소산인 문집>에 실린 글에서, 아내의 책에다가 제목을 붙여준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밝혔다. <규합총서>라는 제목이 서유본 자신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서유본은 여러 사람도 아닌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총서'라고 불릴 만한 책이 나왔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 평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아무 책에나 '총서'라는 제목을 붙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총서'라는 제목을 붙여줬다는 것은, 그가 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집필 과정에 그가 깊이 개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아내의 집필 과정을 직접 돕지 않고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유본은 그런 소극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집필에 필요한 책을 찾아주거나 집필에 개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아내의 집필을 적극 보조했다. 이 같은 남편의 외조가 있었기에 빙허각이 집안일에 농사일까지 하면서도 <빙허각 전서>라는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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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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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존여비 조선시대? 이런 외조 '끝판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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