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만 빛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건축물

[이란 역사문화기행 ⑭] 쉬라즈 연가

등록 2017.04.04 11:36수정 2017.04.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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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통음악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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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통음악 공연 ⓒ 이상기


비샤푸르에서 문화유산을 살펴보고 나니 오후 6시 15분이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계곡에 땅거미가 내린다. 이제 다음 목적지 쉬라즈까지 가야 한다. 이 길은 자그로스 산맥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비샤푸르 지역이 해발 860m 정도라면 쉬라즈는 해발이 1540m이다. 앞으로 두 시간 반 정도는 가야 도착할 수 있다. 그것은 쉬라즈만 해도 인구가 150만이나 되는 큰 도시로 도심에 교통체증이 있기 때문이다.


오후 8시 35분쯤 쉬라즈에 도착한 우리는 전통음악 공연을 하는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꾸란 게이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리는 원형으로 만든 좌식 공간에 앉아 음식을 주문한다. 밥과 고기 야채에 난이 먼저 제공되는 시스템이다. 술을 먹을 수 없으니 무알콜 맥주를 시키거나 요구르트의 일종인 둑(Dugh)을 시킨다. 맥주는 싱겁고, 둑은 시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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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현악기 산투르 ⓒ 이상기


그 사이 앞쪽 공연장에서 이란 전통음악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세 명이 악기를 연주하고 한 명이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다. 악기는 네이(Ney)라 불리는 피리, 북과 장구, 산투르(Santur)라 불리는 판형 현악기 세 종류다. 그러므로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가 한 팀을 이뤄 음악을 연주하고, 거기에 맞춰 노래꾼이 가잘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란에 와서 처음 듣는 음악이 서정적이면서도 애잔하다. 고원과 사막으로 이루어진 자연환경이 음악에 서정성을 부여했다.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에 둘러싸인 지정학적인 위치가 그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가져다주었다. 그 때문에 음악이 슬프고 애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 나라와 주고받은 음악적 교류와 영향이 음악성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쉬라즈에서 꼭 봐야할 관광명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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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칸 궁전 ⓒ 이상기


쉬라즈 첫 일정은 시내 관광이다. 쉬라즈 시내에는 궁전, 사원, 영묘, 바자르가 널려 있다. 궁전으로는 잔드 왕조(Zand Dynasty) 때 만들어진 카림 칸(Karim Khan) 궁전이 유명하다. 우리는 궁전과 정원이 잘 어우러진 나란제스탄 궁전도 찾아갈 것이다. 사원으로는 핑크 모스크로 알려진 나시르 알 몰크(Nasir-al-Molk) 마스지드가 유명하다. 이곳은 마스지드 안으로 비쳐드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하다.

영묘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이맘 자데(Imamzadeh)인 알리 이븐 함제(Ali Ibn Hamzeh)의 영묘다. 여기서 이맘 자데는 이맘의 친척을 말한다. 알리 이븐 함제는 8대 이맘인 레자(Reza)의 조카였다. 다른 하나는 이란을 대표하는 시인의 묘다. 이란의 역사 속에서 최고로 여겨지는 시인은 모두 5명이다. 그 중 허페즈와 사디(Saadi)의 영묘가 이곳 쉬라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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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이븐 함제 영묘 ⓒ 이상기


허페즈는 그의 시집이 이슬람 경전인 꾸란과 함께 집집마다 한권씩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의 시는 괴테를 통해 유럽에 알려졌고, 그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그를 유명하게 한 또 한 사람이 뤼케르트(Friedrich Rückert)다. 뤼케르트는 <동방의 장미(Oestliche Rosen, 1822)>라는 시집을 냈는데, 그곳에 페르시아 시인 페르두시(Ferdosi: 940-1020)와 허페즈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뤼케르트 시집에는 페르두시가 쓴 페르시아 서사시 <왕들의 서 Shahnameh>가 번역되어 실렸고 허페즈의 영향을 받은 시가 실려 있다. 뤼케르트는 허페즈와 마찬가지로 장미, 포도주, 나이팅게일, 사랑과 연인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에서 허페즈의 이름을 언급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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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페즈 영묘 ⓒ 이상기


"서정시 가잘이 불리어질 때
나이팅게일이 인사로 화답하는 것처럼
내가 취해 노래 부를 때
허페즈의 시 구절을 흥얼거린다."

허페즈의 시는 영적이면서도 신비적이다. 그렇지만 세속적이고 또 음악적이다. 신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사랑을 이야기한다. 술을 이야기하고 나이팅게일과 장미를 이야기한다. 허페즈의 시는 언어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뤼케르트는 시를 통해 성과 속을 승화시킨 허페즈에게 존경을 표한 것이다.

바자르로는 바킬(Vakil) 바자르가 가장 유명하다. 그것은 시내 중심가 카림 칸 궁전 옆에 있기 때문이다. 카림 칸 궁전에서 쇼하다(Shohada) 광장을 지나 바킬 바자르에 이르는 구간이 쉬라즈의 구시가지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전 내내 이 지역의 문화유산을 살펴보고, 전통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바자르에서 특산품 쇼핑도 할 것이다.

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는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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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의 스테인드글라스 ⓒ 이상기


우리가 아침 일찍 찾아간 곳은 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다. 이 사원은 태양의 고도가 낮은 아침에 가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향연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 첫 인상은 대수롭지 않다. 입구가 그렇게 특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운데 이완이 있고, 상단부 벌집모양의 무카르나스도 평범하다. 대문을 장식한 남녀 구별 장석이 눈에 띈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꺾어 마스지드 안마당으로 이른다. 안마당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연못을 만들어놓았다. 사방으로 사원건물이 있는데, 이완은 동서방향과 남북방향에 있다. 길게 이어진 서북방향으로는 나무로 창살을 만들고, 그 사이에 색유리를 넣어 색이 자연스럽게 실내공간으로 비쳐들도록 만들었다. 이 빛이 실내에 비치는 실루엣이 환상적이어서 관광객들의 인기코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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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만화경, 색깔 ⓒ 이상기


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는 1876년 카자르 왕국의 하산 알리(나시르 알 몰크)왕의 명령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건축가 무하마드 하산과 디자이너 무하마드 레자의 합작으로 1888년 완성되었다. 이 건축의 특징은 전면 벽에 사용한 오색 스테인드글라스다. 서양 유리의 영향으로 푸른색 계열에 밝은 핑크 계열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 때문에 핑크(Pink) 모스크라 불린다.

그러나 빨강에서 보라에 이르는 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에 무지개빛(Rainbow) 모스크라 불리기도 한다. 햇볕이 드는 오전에는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만화경이 펼쳐진다. 그 때문에 만화경(Kaleidoscope) 모스크라는 이름도 붙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는 색깔이 있는(Colours) 모스크다.

빛이 들어오는 환상적인 실내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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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유리의 환상 ⓒ 이상기


이제 우리는 색의 향연을 체험하기 위해 모스크 안으로 들어간다. 실내공간은 한마디로 고전과 현대를 잘 조화시킨 모습이다. 건축과 패턴은 이슬람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구조는 기하학적이고 과학적이다. 색깔은 예술적이다. 페르시아에서의 색유리전통은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자비르 이븐 하얀(Jābir ibn Hayyān)이 그의 저서 <숨겨진 진주>에서 색유리 제조법 46가지와 유리로 보석을 만드는 기술을 설명해 놓았다.

이를 통해 연금술이 화학으로, 화학이 과학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이슬람권의 유리 제조법이 시리아를 거쳐 베네치아에 전해졌다. 베네치아는 13세기경까지 무슬림의 기법을 모방하는 수준이었지만, 15세기 중반 그들은 크리스탈 유리와 완벽한 유리공예품을 만들어냈다. 오스만 터키시대 그 기술은 거꾸로 이슬람 세계로 수입되었다. 이처럼 동과 서는 유리 기술을 주고받으며 재질, 색깔, 용도에서 최고의 유리제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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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인들 ⓒ 이상기


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러한 유리공예가 적용된 현대적인 사례다. 모스크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오색영롱이고,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일곱 색깔 무지개다.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환상적이다. 이러한 환상을 더하는 것은 바닥에 깔린 페르시아 카펫이다. 카펫의 색깔이 살아나고, 무늬가 입체로 변한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카펫이 우리를 환상적인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 환상의 세계에 밝은색 차도르를 걸친 페르시아 공주가 있다. 검은색 차도르를 걸친 여인들이 그들을 도와준다. 밝은색 차도르에 떨어지는 오색영롱한 빛이 환상적인 무늬를 만든다. 여인들은 도도한 모습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쪽을 바라본다. 사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실내에서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보는 이에게는 뭔가 연극을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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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 외관 ⓒ 이상기


이슬람 모스크는 신심이 우러나는 종교적인 공간이기보다는 인생의 의미를 보여주는 현실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모스크는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아치형 기둥과 창문을 통해 빛의 환상을 보여주는 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 쉬라즈를 방문한 관광객이 첫 번째로 그곳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 모스크, 그곳은 종교적인 공간이지만, 세속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눈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비밀스런 공간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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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의 미학 ⓒ 이상기


이슬람 사원은 대칭의 미학을 보여준다. 사각형이고 이완이 네 개 있는 마스지드를 가장 완성도 높은 사원으로 생각한다. 이곳 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도 이러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미나레트, 창문, 회랑 등을 통해 비정형성을 보여준다. 그것이 이 사원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안마당의 연못에 비치는 한 쌍의 미나레트가 아름답고, 길게 이어진 스테인드글라스 창의 반영이 아름답다.

우리는 이제 남쪽 편 회랑을 통해 지하 우물을 찾으러 간다. 이 우물은 박물관을 지나서 있다. 박물관에는 카자르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이 온통 페르시아어로 되어 있어 그 문화유산이 가지는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박물관을 지나 지하로 가니 우물이 나타난다. 조명을 통해 우물의 수면이 보이는 듯하다. 이 우물은 소가 들어가 물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우물이름이 우천(牛泉: Gav Cha, Cow Wel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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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 조각의 아름다움 ⓒ 이상기


나가는 길에 우리는 잠시 영묘에 들른다. 들어가는 문이 나무로 되어 있고, 그 안쪽은 유리로 되어 있다. 그 안에 안치된 영묘 역시 나무와 유리로 되어 있다. 영묘의 주인공은 카자르시대 이후에 죽은 사람으로 보인다. 알아보고자 했으나 설명이 이란어로 되어 있다. 이름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닐 것으로 생각하며 핑크 모스크를 나온다.

나오면서 꽃무늬 가득한 타일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타일 아래 기둥과 벽 받침에 새겨진 화병과 꽃 조각도 살펴본다. 카자르시대에 오면 예술이 서양의 영향을 받아, 사원에서도 구체적인 사물들이 표현되고 있다. 핑크 모스크가 세워진 19세기말은 이란도 현대사가 시작되는 때다. 그리고 서구 열강들에 의해 영토를 뺏겨나가는 시기다. 쉬라즈에서 우리는 페르시아의 쇠퇴의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쉬라즈 #이란 전통음악 #궁전, 사원, 영묘, 바자르 #나시르 알 몰크 마스지드 #핑크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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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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