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난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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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4년 차 승무원으로 한 달에 반 이상 집을 비운다. 나는 집에서 요리와 빨래 그리고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를 돌본다. 가끔 번역과 과외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지낸 지 1년 정도 됐다. 그 전까지는 10년 차 학원 강사 및 통역과 번역가였다. 서울 시내 번화가의 토익 강사를 그만두고 주부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내 덕분이었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2012년, 내 나이 서른 하나, 아내는 스물 아홉. 당시 번역 및 통역을 하면서 기자 시험을 준비했었다. 같은 학원에서 만난 아내의 목소리와 글솜씨에 반했던 내가 연락처를 물으면서 우리의 연애는 시작됐다. 시작하는 연인답게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언제나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점이었다.
아마 그래서 나와 고맙게도 결혼해 주신(?) 것이 아닐까? 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님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운 집안의 장남이었다. 학원에 다니면서도 일을 해야 했고, 결국 박봉인 기자로는 답이 나오지 않아 과외와 학원강사로 진로를 틀어야 했으니까. 2년의 연애를 마치고 일반적으로 피해야 하는 조건인 나와 혼인 신고를 올리며 아내는 말했다. 이제 혼자 아닌 둘이니 언제나 같이 하자고.
그리고 2년 전, 내가 정신적인 한계에 부딪혀 학원을 그만둘 때도 아내는 같은 말을 해줬다. 둘이 함께라고. 내가 힘들면 자기가 벌면 되고, 자기가 힘들면 내가 벌면 된다며 나를 챙겼다. 가족은 같이 만들어가는 거라며.
그렇게 난 집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집안일은 전혀 낯설지 않은 일이라 크게 어려움은 없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컸기에 초등학교 4학년부터 직접 밥을 해서 먹었고, 빨래와 청소를 했다. 거기다 스무 살에 외국으로 유학을 가 혼자 살았기에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자취로 살았다.
우리 둘은 괜찮지만, 주변에서 신기해하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혹시 아내가 이런 시선에 스트레스받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묻는다. '내가 집에 있어서 이상해?' 그럴 때마다 아내는 뭘 이상한 걸 물어보냐는 표정을 짓는다.
'아내의 꿈'도 소중하다